전투사례 분석
아우디이우카 철수 (2024년 2월): 늦은 결심을 엄호로 메우다
· 2024-02-13 – 2024-02-17
개요(BLUF)
러시아군은 2023년 10월 10일부터 도네츠크시 북서쪽 공업 도시 아우디이우카를 공격했다. 2024년 2월 초 북쪽 텃밭 마을로 들어온 침투조가 하나뿐인 포장 보급로를 위협하자 우크라이나 상급 지휘부는 예비 돌격여단을 투입했다. 그러나 2월 15일 오후 보급로 교차로가 넘어갔고 같은 날 남쪽 제니트 거점도 함락됐다. 총사령관은 2월 17일 01시 직전 포위를 피하려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철수는 흙길을 따라 소규모 조가 대개 걸어서 빠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ISW는 '비교적 통제된' 철수였다고 평가했다(2월 16일). 롱 워 저널(LWJ)은 병력 대부분이 빠져나왔지만 철수 결심이 늦었고 도시 뒤에 튼튼한 제2선이 없었다고 지적했다(2024년 3월 22일). 이 사례는 결심이 늦어진 비용을 엄호 부대와 하급 제대가 어떻게 치렀는지 보여 준다.
사진 1. 전쟁 전의 아우디이우카 코크스·화학 공장(2012년 7월). 도시 북쪽을 막는 거점으로 쓰였고 2024년 2월 17일 새벽 마지막까지 우크라이나군이 머문 곳이다 — 사진: MOs810,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배경과 전략적 맥락
아우디이우카는 2014년부터 전선에 놓여 있던 도시다. 참호와 콘크리트 엄체로 오래 강화된 곳이었고, 개전 전 인구는 약 3만 1천 명이었다(AP, 2024년 2월). 러시아는 2023년 10월 남북 양쪽에서 도시를 감싸려 했고, 초기 기계화 돌격은 큰 손실을 낸 채 진척이 더뎠다.
2024년 초 우크라이나는 미국 지원 지연 탓에 포탄과 방공 자산이 모자랐다. 반면 러시아는 유도 키트를 단 활공폭탄을 대량으로 썼다. 여단 측은 하루 약 60발이 떨어진다고 주장했고(2월 16일), 병력 열세를 7대 1로 표현했다. ISW는 마지막 며칠간 러시아가 국지적·일시적 항공우세를 잡아 근접항공지원을 했다고 평가했다(2월 17일).
지형과 기상
시가지는 남북으로 길다. 북쪽에 코크스 공장과 폐석 더미, 북동쪽에 텃밭 마을(다차 지역), 남동쪽 외곽에 제니트 거점이 있다(그림 1). 도시로 들어오는 포장도로는 북서쪽에서 공업대로로 이어지는 00542 도로 하나뿐이었다. 나머지는 서쪽 라스토치키네·시에베르네·토넨케로 가는 흙길이었다. 서쪽은 탁 트인 들판과 방풍림이라 걸어서 빠지는 병력이 관측과 사격에 그대로 드러났다.
2월 초에는 땅이 물러 전차와 장갑차 기동이 어려웠다. 안개가 우크라이나 무인기 감시를 방해했고, 러시아 침투조가 이 틈을 탔다는 보도가 있다.
양측 전력과 배치
- 우크라이나: 몇 달째 교대 없이 시가지를 지킨 기계화여단이 방어의 중심이었다. 다른 기계화여단들이 측방과 남쪽 9구역을 맡았다. 2월 12–13일 예비 돌격여단이 증원으로 들어왔는데 장병 다수가 실전 경험이 적었고, 시내에 준비된 진지도 많지 않았다(LWJ).
- 러시아: 중부군관구와 제1군단 예하 차량화소총여단 다수가 투입됐다. 우크라이나 관계자는 일대 러시아군을 4만~5만 명으로 추정했다(LWJ 인용, 주장). 러시아군은 1월 남쪽 배수관으로 약 150명을 제니트 뒤편까지 들여보냈고(러시아 측 주장), 2월 초에는 북쪽 텃밭 마을로 들어왔다.
경과
그림 1. 아우디이우카 철수 개략도(2024.2.13–17). 위치·경계·축척은 근사치이며 현재 상황을 나타내지 않는다 — 자체 제작. 시나리오 지도와 LWJ 분석(출처 1), ISW 평가 요약(출처 3, 4) 바탕
- 보급로 위협(2월 5–13일): 러시아군은 2월 5일께 00542 도로 입구 약 1km까지 접근했다. 13일에는 정비창 부지를 잡아 공업대로를 끊었다. 같은 날 밤 제니트 수비대에는 '각자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갔다고 한다.
- 교차로와 제니트 상실(2월 15일): 오후에 러시아군이 00542 도로와 공업대로 교차로에 이르렀고, 제니트도 넘어갔다. 제니트 병력은 폭이 약 120m라는 좁은 통로로 들판을 건너 걸어서 빠졌고, 부상자 일부를 두고 나와야 했다(우크라이나 장병 증언).
- 도시 분할(2월 16일): 러시아군이 도심 공원까지 들어와 시가지가 갈렸다. ISW는 서쪽과 남쪽 러시아군 진지 사이가 약 3.5km라고 봤다. 예비 여단은 이날 철수 명령을 받았다.
- 철수(2월 16–17일): 총사령관은 17일 01시 직전 철수를 발표했다. 예비 여단은 05시께 코크스 공장에서 대부분 빠졌고, 남쪽 기계화여단은 동틀 무렵 9구역을 떠났다. 그 직후 러시아군이 시에베르네로 가는 길을 차지했다. 러시아는 같은 날 도시 장악을 발표했다.
그림 2. 2월 13–17일 시간표. 색은 정보의 성격을 나타낸다(파랑: 우크라이나 측 발표·조치, 빨강: 러시아군 진출 보도, 주황: ISW 독립 평가) — 자체 제작. 출처 1–5 바탕
철수는 2월 17일로 끝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은 26일 라스토치키네, 27일 시에베르네·스테포베에서도 물러났고, 토넨케–오를리우카–베르디치 선에서 방어가 안정됐다고 밝혔다(우크라이나 측 발표, 로이터는 독립 확인 불가).
결심 포인트 분석
그림 3. 결심 포인트별 방책과 선택. 주황 테두리가 실제로 택한 방책이다. 결심 3·4는 시나리오의 대대 결심과 같은 틀이다 — 자체 제작. 본문 분석과 출처 1–5 바탕
결심 1: 버틸 것인가, 언제 뺄 것인가(우크라이나 상급 지휘부, 2월 초–16일)
방책은 (가) 보급로가 위협받는 즉시 철수, (나) 예비 여단을 넣어 보급로를 되찾고 2–3일 안에 안 되면 철수 통로 조직, (다) 끝까지 고수였다. (나)가 택해졌다(이웃 지역 지휘관의 설명, 2월 16일). 방어로 러시아 전투력을 소모시키고 있었고 정치적 부담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보급로는 다시 열리지 않았고, 철수는 교차로를 잃은 뒤에야 시작됐다. LWJ는 함락이 사실상 확정된 뒤에야 철수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시나리오 결심 3에서 대대장이 '철수 건의와 사전 준비'를 고르는 장면이 이 지점이다.
결심 2: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러시아 지휘부, 2023년 10월–2024년 2월)
초기에는 기계화 부대로 남북 양쪽에서 돌격했지만 손실이 컸다. 이후 무게를 소규모 조 침투와 활공폭탄 화력으로 옮겼다. 배수관 침투, 안개를 이용한 북쪽 텃밭 마을 침투가 그 예다. 무인기 감시가 약해지는 조건을 골라 보급로로 파고든 것이 결정적이었다. 대가로 큰 손실을 감수했다(LWJ, 수치는 검증 불가).
결심 3: 보급로 입구의 적(예비 여단 예하 대대, 2월 13일)
시나리오 결심 1이다. 방책은 (가) 즉시 역습해 도로를 되찾기, (나) 포장도로를 포기하고 흙길 어깨 고수, (다) 정찰 후 투입, (라) 코크스 공장 거점 합류였다. 공개 자료로 보면 실제 임무는 (가)였다. 상급부대가 보급로 재개방을 우선했다. 도로는 되찾지 못했다. 다만 이 여단이 이후 통로 어깨를 지키는 엄호 부대가 되면서 철수의 성패를 좌우했다.
결심 4: 압박 속 철수 방식(대대·여단, 2월 16–17일)
시나리오 결심 4–6이다. 방책은 (가) 남은 차량에 태워 한 길로 일괄 철수, (나) 소규모 조로 시차를 두고 여러 흙길로 도보 철수하며 후위가 통로 유지, (다) 인접 부대가 다 빠질 때까지 전원 고수였다. 실제로는 (나)였다. 포장도로는 이미 적 화력 아래 있었고, 차량 종대는 활공폭탄과 무인기의 쉬운 표적이었다. 병력 대부분이 빠져나왔다. 그러나 전파방해와 서로 맞지 않는 무전 탓에 일부 부대는 다른 부대가 모르는 사이 먼저 빠졌고, 공식 명령을 받지 못한 장병도 있었다. 포로 규모는 우크라이나 관계자 비공개 추정 약 100명부터 장병 증언 850–1,000명까지 엇갈린다. LWJ는 낮은 쪽이 사실에 가깝다고 봤다.
교훈
- 후퇴 작전: 철수는 결심보다 준비가 먼저다. 경로·순서·후송·엄호 부대를 미리 정해 두면 결심이 늦어도 실행할 수 있다. 엄호 부대와 후위의 이탈 시점이 전체 성패를 가른다.
- 임무형 지휘: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철수 준비는 할 수 있다. 상급부대와 연락이 끊긴 마지막 며칠에는 하급 제대의 판단이 철수를 이끌었다.
- 제병협동과 통신: 무전 체계가 다른 부대끼리는 연락장교와 시간·신호·집결지 약속이 필요하다. 무전에만 기대면 누가 빠졌는지 알 수 없다.
- 무인기·기상·침투: 안개 같은 감시 공백은 소규모 침투의 기회가 된다. 지상 경계부대로 메워야 한다.
- 종심 방어: 물러날 자리는 물러나기 전에 만든다. 제2선이 없어 철수 부대는 교전 중에 참호를 파고 지뢰를 깔아야 했다.
미확인 쟁점
- 포로·실종 규모: 약 100명(우크라이나 관계자 비공개 추정, 미국 관계자 전언)부터 850–1,000명(장병 증언)까지 차이가 크다. 러시아 측은 약 200명이 항복했다고 주장했다(2월 24일).
- 철수 결심 시점: 상급 지휘부가 언제 철수를 검토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작전·전략 집단 지휘관은 미리 준비한 진지로 물러났고 포위된 부대는 없다고 주장했으나, 예비 여단 쪽에서는 포위를 뚫고 나오는 중이라는 엇갈린 말이 나왔다.
- 병력비 7대 1, 하루 활공폭탄 약 60발은 여단 측 주장으로 독립 검증되지 않았다.
이 전투의 대대장 자리에서 직접 결심해 보려면 아우디이우카 철수 시나리오로 가 보라.
출처
- FDD Long War Journal, "Battle of Avdiivka: A Preliminary Analysis" (2024-03-22). https://www.longwarjournal.org/archives/2024/03/battle-of-avdiivka-a-preliminary-analysis.php (접속 2026-10-13)
- AP(PBS NewsHour 게재), 아우디이우카 철수 발표 보도 (2024-02-16). https://www.pbs.org/newshour/world/ukraine-to-withdraw-from-avdiivka-where-outnumbered-defenders-held-out-for-4-months (접속 2026-10-13)
- Espreso, ISW 2월 16일 평가 요약('비교적 통제된 철수') (2024-02-17). https://global.espreso.tv/military-news-ukrainian-troops-make-relatively-controlled-withdrawal-from-avdiivka-isw (접속 2026-10-13)
- Kyiv Post, ISW 2월 17일 평가 요약(포위 주장, 근접항공지원). https://www.kyivpost.com/amp/post/28223 (접속 2026-10-13)
- Kyiv Post, 제니트 철수와 예비 여단 투입 보도 (2024-02-16). https://www.kyivpost.com/post/28161 (접속 2026-10-13)
- Euromaidan Press, 작전·전략 집단 지휘관의 철수 설명 (2024-02-17). https://euromaidanpress.com/2024/02/17/commander-ukrainian-troops-withdrew-from-avdiivka (접속 2026-10-13)
- Reuters(Swissinfo 게재), 시에베르네·스테포베 철수와 새 방어선 보도 (2024-02-28). https://www.swissinfo.ch/eng/ukraine-withdraws-from-two-villages-near-avdiivka/73100687 (접속 2026-10-13)
- Wikipedia, "Battle of Avdiivka (2023–2024)" (교차확인용).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Avdiivka_(2023%E2%80%932024) (접속 2026-10-13)
- Wikimedia Commons, 아우디이우카 코크스·화학 공장 사진 파일 페이지(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vdijivskij_Koksochimicheskij_Zavod.JPG (접속 2026-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