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사례 분석
심층 분석 | 아우디이우카 철수 — 늦게 내려진 결심을 엄호하려면 무엇이 필요했나
· 2024-02-13 – 2024-02-17
개요
1편: 아우디이우카 철수 (2024년 2월)가 전투의 큰 줄기를 다뤘다면, 이 글은 그 안의 작은 결정들을 들여다본다. 2024년 2월 13일부터 17일 사이 우크라이나군은 아우디이우카로 들어가는 유일한 포장도로를 잃었고, 서쪽 시에베르네 방향 흙길 통로를 지키며 소규모 조로 걸어서 도시를 빠져나왔다[1][2]. 이 글이 묻는 것은 "왜 도시가 함락됐나"보다 좁다. 떠나라는 결심이 늦게 내려온 뒤, 대대와 여단은 병력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무엇을 제대로 해야 했나[1][10][12]. 아래에서는 고도·기온 같은 수치로 지형과 날씨를 다시 읽고, 훈련 시나리오의 국면 열 곳(p1p7과 가정 국면 x1x3)을 차례로 따라간다.
사진 1. 2024년 겨울의 아우디이우카 코크스 공장(Commons 기재 날짜 2024년 2월 17일). 앞쪽 같은 개활지를 철수하는 조들이 건너야 했다 — 사진: 작자 미상(제47기계화여단),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전략·작전 맥락
러시아군은 2023년 10월 10일부터 아우디이우카를 공격했다. 처음에는 남북 양쪽에서 감싸려 했고, 기계화 돌격이 큰 손실을 내자 소규모 돌격조 위주로 바꿨다[1][13]. 아우디이우카는 점령된 도네츠크 시 북쪽에서 우크라이나군 제1방어선의 중심 거점이었다. 폴란드 동방연구센터(OSW)는 이 도시를 잃은 것이 사실상 그 방어선의 돌파와 같다고 평가했다[11]. ISW는 함락 전부터 도시 점령이 러시아에 주로 정치·선전상의 이득을 줄 것이라고 봤다. 시점도 러시아에 중요했다. 전면 침공 2주년(2월 24일)과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6].
우크라이나군은 포탄이 모자랐다. 미국 의회에서 약 600억 달러 규모의 지원안이 묶여 있었고,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군 진전의 "상당 부분"을 이 탄약 부족 탓으로 돌렸다[6]. 러시아군은 활공폭탄을 대량으로 썼다. ISW는 마지막 며칠 동안 러시아군이 아우디이우카 상공에서 일시적·국지적 항공우세를 확보해 지상군을 지원했으며, 이번 전쟁에서 처음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3][4]. 수비 여단의 공보 장교는 병력 열세를 7 대 1로 주장했다[6].
상급 부대의 의도는 조건부였다. 예비로 투입된 제3돌격여단은 러시아군을 도로에서 몰아내고 보급로를 다시 열어야 했다. 우크라이나 의용 보병 지휘관은 "앞으로 2~3일" 안에 이것이 실패하면 임무가 계획된 철수를 위한 통로 조직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5]. 시나리오의 플레이어는 이 예비 여단의 대대장이다.
지형·기상 정밀 분석(OAKOC)
그림 1. 아우디이우카 철수 상세도(개략·추정). 지명 위치는 OSM 좌표[18], 표고는 Open-Meteo 고도 자료[17] 기준이다. 부대 위치, 제니트, 텃밭, 통로는 추정이며 2024년 2월까지만 나타낸다 — 자체 제작. 출처 1–3, 5, 8, 11 바탕
관측·사계(O). 도시는 서쪽 마을들보다 높다. 고도 자료로 보면 도시 중심은 해발 약 221m, 철도역은 220m인데 라스토치키네는 185m, 시에베르네는 189m, 토넨케는 174m다[17]. 도시 서쪽 가장자리를 쥔 쪽은 통로가 지나는 들판을 30~45m 위에서 내려다본다. LWJ는 러시아군이 이어서 서쪽의 "낮은 지대" 마을들을 차지했다고 적었다[1]. 북쪽 수비대에는 코크스 공장의 높은 구조물(사진 1)이 관측점 구실을 했다.
접근로(A). OSM 좌표로 재면 라스토치키네는 철도역에서 서쪽으로 약 3.8km, 시에베르네는 서남서로 약 5.4km 떨어져 있고, 코크스 공장에서 시에베르네까지는 약 5.5km다[18]. 러시아군의 접근로는 셋이었다. 북쪽에서는 이부시카 텃밭 마을을 지나 공장을 우회하며 00542 도로 입구로 내려왔고, 동쪽에서는 여과장을 지나 도심으로, 남쪽에서는 제니트를 거쳐 시에베르네 길로 다가왔다[1][2]. 우크라이나군이 빠져나갈 길은 서쪽으로 뻗은 흙길뿐이었다.
핵심 지형(K). 처음에는 00542 도로와 공업대로가 만나는 교차로였다. 공업대로는 코크스 공장과 남쪽 9구역 고층 아파트 지대를 잇는 길이었다[1]. 교차로를 잃은 뒤에는 남서쪽 시가지에서 시에베르네로 이어지는 흙길 통로의 양쪽 어깨가 핵심 지형이 됐다.
장애물(O). ERA5 재분석 자료로 보면 2월 9일에 12.1mm(적설 7.6cm), 10일에 15.4mm의 눈비가 내렸고, 이후 기온이 올라 14일 낮 최고 14.3도까지 녹았다. 그 뒤 다시 얼어 15·16·17일 밤 최저기온은 각각 영하 2.4도, 5.3도, 6.5도였다[16]. 철수 당일 흙길은 얼어 있었던 셈이다. 철수 과정에서는 버려진 차량이 길을 막는 장애물이 됐다[1]. 시나리오 p6의 돌발 상황(버려진 차량에 막힌 흙길)은 여기서 나왔다.
은폐·엄폐(C). 도시 서쪽은 들판과 방풍림이 거의 전부다. 우크라이나 측 보도는 러시아군이 2월 초 안개를 틈타 텃밭 마을로 들어왔다고 전했다. 안개는 드론의 눈을 가린다[1]. ERA5는 안개를 직접 기록하지 않으므로 이 대목은 보도에 기댄다. 2월 16~17일 해는 17시 51분에 지고 07시 33분에 떴다[16]. 13시간 넘는 어둠이 철수를 가려 주었지만, 열상 장비를 단 드론 앞에서 그 효과는 크게 줄었다. 제니트에서 나온 한 병사는 시야가 "전혀 없어" 움직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13].
지명 표기. OSM은 이 마을의 우크라이나어 옛 이름을 Сєверне로, 현재 이름을 Північне(피우니치네)로 적는다[19]. 우크라이나의 2010년 로마자 표기 규정은 자음 뒤의 є를 ie로 적으므로[21] 영문 철자가 Sieverne가 된다. 1편과 시나리오의 "시에베르네"는 이 영문 철자를 옮긴 것이고, 원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는 "세베르네"다(OSM의 한국어 옛 이름 표기도 이것이다[19]). 이 글은 1편과 맞추어 시에베르네를 쓴다. 라스토치키네도 2024년 9월 의회 결정으로 크리니치네로 이름이 바뀌었다[20]. 이 글은 2024년 2월 당시 지명을 쓴다.
편성과 지휘 관계
중대급 배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표의 "추정"은 시나리오 가정이다.
| 측 |
제대 |
부대·요소 |
역할 |
근거 |
| 우크라이나 |
집단 |
타우리아 작전전략집단 |
지역 지휘 |
[7][8] |
| 우크라이나 |
여단 |
제110기계화여단 |
약 2년간 교대 없이 도시 방어의 중심, 지친 부대는 2.13 철수 |
[1][10] |
| 우크라이나 |
중대 |
제110여단 제1대대 제2중대 |
제니트 방어 |
[5] |
| 우크라이나 |
여단 |
제3돌격여단(예비) |
도로 탈환, 이후 철수 엄호 |
[1][5][9] |
| 우크라이나 |
대대 |
제3여단 제2돌격대대 |
공장 좌측, "끝에서 두 번째"로 이탈 |
[1] |
| 우크라이나 |
대대 |
제47기계화여단 제25돌격대대 |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부대로 보도 |
[1] |
| 우크라이나 |
여단 |
제53기계화여단 |
9구역 방어, 제니트 이탈 엄호 |
[1] |
| 우크라이나 |
대대급 |
정보총국(HUR)·특수작전군(SSO)·국경수비대 "도조르"·제225돌격대대 |
철수 통로 확보 |
[1] |
| 우크라이나 |
중대 |
시나리오 대대 |
전방 2개 중대, 예비 1개 중대(추정) |
시나리오 |
| 러시아 |
여단 |
제114차량화소총여단(제80전차연대·제30여단과 함께) 또는 제74여단 선두 |
북쪽 돌파, 출처마다 엇갈림 |
[1] |
| 러시아 |
여단 |
제1 "슬라브" 차량화소총여단 |
2.15 제니트 점령 |
[1] |
| 러시아 |
여단 |
제60여단 |
1월 배수관으로 약 150명 침투 |
[1] |
| 러시아 |
부대 |
제35여단·제239전차연대·제24특수임무여단 |
2.17 역과 도심 진입 |
[1] |
총병력은 모두 주장이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이 지역 러시아군을 4만5만 명으로 봤고[1], 제3여단 부여단장은 공격 병력을 약 1만 5천 명으로 추산했다[6]. 북쪽 돌파가 성공하면 적어도 3개 여단, "어쩌면 2천4천 명"이 고립될 수 있었다[5].
지휘 관계의 약점은 구조에 있었다. 예비 여단은 지친 여단이 지키던 지역에 들어왔고, 무전 체계가 서로 다른 여러 여단이 통로 하나를 나눠 썼다. 병사들은 나중에 무전기가 맞지 않아 일부 부대가 다른 부대가 모르는 사이에 먼저 떠났다고 말했다[1][9].
시간대별 경과
2월 5일 ~ 12일: 북쪽 침투
5일께 러시아군은 00542 도로 입구 약 1km까지 다가왔다[1]. 제3돌격여단의 도착 날짜는 출처에 따라 3일에서 13일까지 엇갈린다. 장병 다수가 실전 경험이 없었고, 장교들은 시내에 제대로 준비된 진지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1]. 9~10일에는 눈비가 28mm 가까이 내렸다[16].
2월 13일: 차량기지와 제니트
러시아군이 차량기지를 차지하고 공업대로를 끊었다[1]. 같은 날 지친 제110여단 부대들이 빠졌고, 병사들은 일부가 "사전 협조 없이" 진지를 떠났다고 증언했다[1]. 21시께 제니트 수비대에는 "각자"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제53여단이 이를 엄호했다[1]. 예비 여단 일부가 이날까지 전투에 들어간 사실은 영상으로 확인된다[1].
2월 14일: 해빙
낮 기온이 14.3도까지 올랐다[16]. 의용 보병 지휘관은 예비 여단에 고속도로를 되찾을 시간을 2~3일로 봤다[5].
2월 15일: 교차로 상실
오전에 후송 차량이 제니트에 닿지 못해 부상자 6명이 남겨졌다[1][5]. 제니트 병력은 폭 약 120m로 전해진 통로를 따라 들판을 걸어 시에베르네와 토넨케 쪽으로 빠져나왔다[1]. 오후에 러시아군이 00542 도로와 공업대로의 교차로, 그 옆 식당 단지에 도달했고 제니트를 점령했다[1]. 동쪽 여과장에서도 철수가 시작됐다[1]. OSW는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남서쪽과 동쪽 외곽의 요새화 지역을 떠났다고 적었다[11].
2월 16일: 갈라진 시가지
아침까지 여과장이 넘어갔다[1]. 위치가 확인된 영상에는 도심 공원에 들어온 러시아군이 보였다[2]. ISW는 서쪽 외곽과 남쪽의 러시아군 사이가 러시아 블로거들이 말한 "1km 남짓"이 아니라 약 3.5km라고 보았고, 철수가 "비교적 통제된" 방식으로 진행 중이며 질서 있는 철수를 위해 국지 역습이 필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2]. 제3여단에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1].
2월 17일 00시 ~ 08시: 걸어서 나오다
총사령관이 01시 직전 포위를 피하기 위한 철수를 발표했다[1][6]. 제3여단은 05시께 공장에서 대부분 빠져나왔다[1]. 부대들은 포병·드론·항공 공격 아래 소규모 조로, 대개 걸어서 흙길을 따라 이동했다. 마지막 며칠은 전파방해로 통신이 끊기기 일쑤였다[1][9]. 제53여단은 동이 튼 직후 9구역을 떠났고, 곧이어 러시아군이 아우디이우카–시에베르네 길을 차지했다[1].
2월 17일 낮: 주장과 평가
러시아군은 공장에 깃발을 올렸고 러시아 국방장관은 "완전 장악"을 주장했다[1][3]. ISW는 대규모 포위를 했다는 러시아 측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3]. 우크라이나는 이날 도네츠크주 상공에서 러시아 항공기 3대를 격추했다고 발표했고, ISW는 부족한 방공 자산을 철수 엄호에 투입했을 것으로 평가했다[3].
2월 18일 ~ 28일: 없었던 제2선
19일 러시아군이 라스토치키네에 들어가 후위의 저항을 만났다[11]. 우크라이나군은 26일 라스토치키네, 27일 시에베르네와 스테포베에서 물러났고, 토넨케–오를리우카–베르디치 선에서 방어가 안정됐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이를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8].
결심 포인트 심층
제목은 훈련 시나리오의 국면을 따른다. x1~x3은 이 전장에서 흔히 벌어진 상황을 바탕으로 꾸민 가정 국면이며 보도된 사건이 아니다(그림 2).
그림 2. 결심 흐름과 시간표. 기온과 일출·일몰은 ERA5 재분석의 아우디이우카 격자값이다[16]. 결심 시각은 훈련 시나리오 설정이다 — 자체 제작
p1 보급로 입구의 적 (2월 13일 07:00)
알던 것: 텃밭에서 내려온 적 소규모 조들이 도로 입구 1km 남짓까지 왔다(B2). 여단은 2~3일 안에 도로를 못 열면 철수 통로를 따로 조직한다고 했다(A2). 적이 교차로를 넘었다는 소문(F6)도 있었다. 선택지: 즉시 역습, 흙길 어깨 고수, 정찰 후 투입, 공장 합류. 실제: 예비 여단은 도로를 다시 열라는 임무로 투입됐지만[5] 도로는 끝내 열리지 않았다[1]. 다른 선택이었다면: 흩어진 소규모 조는 역습으로 깨끗이 몰아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첫날 도로를 내줬다면 교차로를 이틀 일찍 잃었을 것이다.
x1 고립된 소대 (2월 13일 20:00, 가정)
상황: 역습에 나선 소대 둘이 도로 입구 북쪽 건물에 갇혔다. 부상자가 있고 탄약이 떨어져 간다. 권고: 어둠을 틈타 걸어서 흙길 어깨 진지로 데려온다. 실제로는: 제3여단 일부 장병이 포위됐다가 큰 손실 없이 빠져나왔다는 보도가 있다[13].
p2 교차로 상실 (2월 15일 15:00)
알던 것: 포장도로는 막혔고 제니트도 넘어갔다. 여단은 흙길 통로를 지키라고 했다. 선택지: 흙길 어깨를 진지로 만들고 보급·후송을 야간 경차량으로 바꾸기, 대대로 교차로 탈환, 대규모 수송대 강행, 화력으로 교차로 거부. 실제: 부대들은 흙길에 의존했다[1]. 다른 선택이었다면: 교차로 역습은 나중에 통로를 지킨 병력을 미리 써 버렸을 것이다. FM 3-90도 소수의 주 보급로보다 여러 대체 경로를 쓰라고 한다[15].
p3 좁아지는 통로 (2월 15일 23:00)
알던 것: 제니트 병력은 들판을 걸어 나오며 부상자를 남겼다[1][5]. 러시아 측은 라스토치키네로 가는 흙길이 곧 끊긴다고 주장했다[2]. 철수 명령은 아직 없었다. 선택지: 명령 대기, 국지 역습으로 어깨를 지키며 상급 부대에 결심을 건의하고 경로·순서·후송을 지금 계획하기, 중대 하나를 남쪽으로 보내기, 명령 없이 철수. 실제: 엄호 부대가 통로를 지켰다[1]. 다른 선택이었다면: 분석가 다수가 놓친 순간을 여기로 본다. 한 공개정보 분석가는 최종 결심이 15일께 내려졌을 것으로 봤고, 우크라이나에 자문하는 영국 예비역 중령은 싸우면서 물러나는 철수를 3주 전에 계획했어야 한다고 말했다[10]. 경로·순서·부상자 후송을 미리 짜는 데는 전투력이 들지 않고, 그 몇 시간이 나중에 큰 차이를 낸다[12].
x2 무너진 서쪽 어깨 (2월 16일 06:00, 가정)
상황: 밤사이 통로 서쪽 어깨를 빼앗겼고, 적이 철로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시에베르네 흙길을 끊으려 한다. 권고: 남은 병력으로 국지 역습해 어깨를 되찾는다. FM 3-90은 철수 중 예비대를 앞쪽에 두어 역습하고 철수로를 지키게 한다[15]. 실제로는: 러시아군이 이 길을 끊으려 남진했지만 통로는 철수가 끝날 때까지 유지됐다[1].
p4 철수 명령 (2월 16일 16:00)
알던 것: 시가지가 남북으로 갈렸고 철수 명령이 내려왔다. 걸어서 나가는 병력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택지: 엄호 부대로 남아 부상자·지원 요소부터 보내기, 남은 차량으로 해 지기 전 한 번에 이탈, 통로를 넘기고 먼저 철수, 중대 하나를 공장에 남겨 시간 벌기. 실제: 엄호 부대가 통로를 지키는 사이 주력이 빠졌다[1]. 다른 선택이었다면: 이미 러시아군 화력 통제 아래 있던 00542 도로로 차량 종대가 나섰다면 활공폭탄과 드론의 표적이 됐을 것이다[1].
p5 압박 속의 철수 (2월 17일 01:00)
알던 것: 철수가 공식 발표됐다. 흙길은 포병·활공폭탄·자폭 드론에 노출돼 있다. 전파방해로 상급 부대와 연락이 자주 끊기고, 인접 여단과는 무전 체계가 다르다. 선택지: 차량에 태워 한 길로 빠르게, 소규모 조로 나눠 여러 흙길을 시차를 두고 걸어서 이동하고 후위가 마지막 조까지 통로를 지키기, 인접 부대가 모두 빠졌다는 확인이 올 때까지 대대 전체가 버티기. 실제: 소규모 조, 대개 도보였다[1]. 다른 선택이었다면: 통신망이 작동하지 않는데 확인을 기다리며 버티면 날이 밝은 뒤 대대 전체가 위험해진다.
사진 2. 거듭된 포격과 폭격 뒤의 아우디이우카 최고층 아파트(2024년 1월 18일). 철수하는 조들이 피하려 한 것이 이런 위력의 폭탄이었다 — 사진: 우크라이나 국가경찰,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x3 집결지에 오지 않은 조 (2월 17일 03:00, 가정)
상황: 집결지에 와야 할 조 몇 개가 보이지 않는다. 중대 무전은 거의 먹통이고 날이 밝기까지 세 시간 남짓 남았다. 권고: 드론으로 찾아내 미리 약속한 신호와 경로로 데려온다. 실제로는: 일부 장병은 정식 명령 없이 스스로 떠났고, 일부는 남겨지거나 포로가 됐다[1][9].
p6 마지막 후위 (2월 17일 05:00)
알던 것: 대부분의 조와 공장 병력이 빠져나왔다. 남쪽 주거 구역의 다른 여단은 아직 이동 중이다. 적은 시에베르네 길을 끊으려 남진하고 있다. 선택지: 인접 여단의 마지막 조 통과를 확인한 직후 후위를 조별로 이탈시키기, 날이 밝아도 모든 아군이 빠질 때까지 버티기, 어두울 때 지금 바로 빼기, 남은 포병 사격으로 적을 막고 그 아래서 빼기. 실제: 예비 여단의 한 대대가 "끝에서 두 번째"로 떠났고, 제53여단은 첫 햇빛과 함께 9구역을 빠져나왔다[1]. 다른 선택이었다면: 후위가 곧바로 빠졌다면 제53여단이 나올 문이 닫혔을 것이다.
p7 제2선이 없다 (2월 17일 12:00)
알던 것: 도시 서쪽에는 얕은 참호와 적은 지뢰뿐이다. 적은 계속 서쪽으로 밀고 올 것이다. 선택지: 접촉 중이라도 지금 자리에서 참호를 파고 지뢰를 깔기, 적이 자리 잡기 전에 역습, 더 서쪽으로 물러나 재편. 실제: 부대들은 교전 중에 참호를 파고 지뢰를 깔았다[1]. 열흘 뒤에는 토넨케–오를리우카–베르디치 선에 섰다[8]. 다른 선택이었다면: 지친 부대가 도시에서 내려다보이는 들판을 건너 역습했다면 지난 한 주의 교훈을 거꾸로 밟았을 것이다.
교리로 다시 읽기
압박 속의 철수(FM 3-90 11장 11-72, 11-73항). 교범은 공격자가 철수를 패주로 바꾸려 하며 지상·항공 우세까지 가질 수 있다고 쓰고, 철수를 "본질적으로 위험한" 작전이라 부른다. 그래서 적이 관측하지 못하는 시간과 조건에 움직이라고 한다[15]. 아우디이우카에는 둘 다 있었다. 러시아군의 국지 항공우세[3][4]와 야간 도보 이동이다[1].
편성(11-75~11-78항, 8장 8-43항). 철수 부대는 경계부대·주력·예비대로 나누고, 필요하면 접촉 유지 분견대(DLIC)를 남겨 단계적으로 접촉을 끊는다[15]. 통로를 지킨 정보총국·특수작전군·돌격대대들이 그 경계부대였다. 교범은 경계부대에 규모 이상의 전투력 증강 수단을 줘야 한다고 하고[15], 웨스트포인트 현대전연구소(MWI)의 분석도 방공과 대포병 자산을 같은 이유로 강조한다[12].
계획(11-80, 11-83항). 철수는 언제나 적의 압박을 전제로 계획한다. 지휘관은 세 가지를 함께 결심한다. 지원 요소를 언제 움직일지, 전방 부대를 언제 뺄지, 경계부대가 언제 접촉을 끊을지다[15]. 시나리오의 p3·p4가 앞의 둘, p6이 마지막 하나에 해당한다.
실행(11-88, 11-90, 11-92항). 접촉이 가장 적은 부대가 먼저 빠지고, 주력은 여러 경로로 움직이며, 적이 길을 막으면 대체 경로로 우회한다[15]. 공장과 도심 병력이 먼저, 9구역이 새벽에 마지막으로 빠진 순서가 이와 맞는다. 부상자 후송을 다룬 11-11항은 제니트를 겪고 나면 다르게 읽힌다.
침투(2장 2-82, 2-84항). 교범은 감시 기술이 발달해 들키지 않는 침투가 어려워졌다고 쓴다[15]. 2월 초의 안개는 그 기술의 이점을 지웠다[1]. 러시아 교범은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그림 3. 아우디이우카 철수 국면별 기동(18초 반복). 움직임 줄이기 설정에서는 최종 상황만 보인다. 위치는 개략·추정이다 — 자체 제작
사료 비판
포로·실종.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병사 둘은 포로·실종을 850~1,000명으로 봤고 서방 관리들도 그럴 법하다고 했다[9]. 러시아 장성은 약 200명이 항복했다고 주장했고, 미국 관리들은 우크라이나가 내부적으로 약 100명으로 본다고 전했다[1]. OSW는 "아마 수백 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썼다[11]. 3월 29일 총사령관은 25명이라고 밝혔다[14]. 이 숫자들은 서로 다른 것(포로, 실종, 아직 확인 안 된 인원)을 서로 다른 날짜에 센 것이다. LWJ는 가장 큰 수치를 부풀려진 것으로 봤고[1], 가장 작은 수치는 당사자의 공식 발표다.
시각. 철수 발표 시각은 AP와 LWJ에서 "01시 직전"[1][6], 키이우 인디펜던트에서 "02시"[10], OSW에서 "자정 이후"다[11]. 그날 밤 송고된 AP 기사가 사건에 가장 가깝다.
마지막 부대. LWJ는 17일 05시께 공장이 거의 비었다고 썼고[1], 흐로마즈케는 제47여단의 마지막 부대가 19일에 공장 진지를 떠났다고 보도했다[13]. 일부 소수 병력이 남아 있었다면 둘 다 맞을 수 있다.
사전 준비 진지. 타우리아 작전전략집단 사령관은 철수 당일 아침 "미리 준비한 진지"로 물러났다고 말했다[7]. LWJ는 튼튼한 제2선이 없었다고 봤고[1], OSW는 515km 뒤에 훨씬 덜 요새화된 제2선이 있다고 썼다[11]. 앞의 것은 당일 지휘관의 발언이고, 뒤의 둘은 며칠몇 주 뒤의 분석이다. 열흘 뒤 실제 방어선이 토넨케 일대에서 안정된 것[8]은 OSW의 설명과 가장 잘 맞는다.
통제된 철수인가, 혼란인가. ISW는 대규모·혼란 철수의 영상 증거가 없다고 봤고[2], 뉴욕타임스 취재원들은 계획이 허술하고 늦었다고 했다[9]. 두 평가는 서로 다른 제대를 본 것이다. 전체 병력은 대부분 빠져나왔지만, 늦은 협조의 대가를 일부 조가 치렀다.
교훈
- 시한과 준비를 묶어라. "2~3일"은 좋은 기준이었다. 다만 경로·순서·부상자 후송 계획은 첫날부터 시작해야 한다.
- 도로를 잃으면 통로가 주노력이다. 통로를 지키는 경계부대에는 규모 이상의 자산을 줘야 한다.
- 무전이 맞지 않는다는 전제로 계획하라. 연락장교, 정해 둔 시각·신호·집결지가 있으면 통신망 없이도 누가 빠졌는지 셀 수 있다.
- 부상자 후송은 명령이 오기 전에 계획하라.
- 물러날 진지를 먼저 만들어라. 들판으로 물러난 부대는 적과 맞닿은 채 참호를 파야 한다.
미확인 쟁점
- 포로·실종자 수.
- 상급 지휘부가 철수를 처음 검토한 시점.
- 마지막 조가 공장을 떠난 날(17일 또는 19일)과 예비 여단의 도착일(3~13일).
- 북쪽 돌파를 이끈 러시아군 여단.
- 제니트에 남겨진 부상자에 관한 양측의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다[5][13].
더 보기
▶아우디이우카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철수한 소식을 전하는 영상 보도영상: 몇 달간의 격전 끝에 아우디이우카에서 철수한 우크라이나군 · DW News, 2024
사진 3. 거듭된 타격을 받은 코크스 공장 행정 건물(2023년 10월 19일, 공세 초기) — 사진: Oleksii Mazepa / ArmiyaInform,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 Forte, MWI(2024)[12], 미 육군 FM 3-90 Tactics(2023) 11장[15].
- 직접 대대를 지휘해 보려면 아우디이우카 철수 시나리오를 열어 보라.
출처
- John Hardie, "Battle of Avdiivka: A Preliminary Analysis", FDD's Long War Journal, 2024-03-22. https://www.longwarjournal.org/archives/2024/03/battle-of-avdiivka-a-preliminary-analysis.php (확인 2026-10-13)
- Espreso Global, "Ukrainian troops make relatively controlled withdrawal from Avdiivka - ISW"(ISW 2월 16일 평가 요약), 2024-02-17. https://global.espreso.tv/military-news-ukrainian-troops-make-relatively-controlled-withdrawal-from-avdiivka-isw (확인 2026-10-13)
- Kyiv Post, ISW 2월 17일 러시아 공세 평가 전재, 2024-02-17. https://www.kyivpost.com/amp/post/28223 (확인 2026-10-13)
- Ukrinform, "Russian forces were able to capture Avdiivka due to air superiority - ISW", 2024-02-18. https://www.ukrinform.net/amp/rubric-ato/3828867-russian-force-were-able-to-capture-avdiivka-due-to-air-superiority-isw.html (확인 2026-10-13)
- Stefan Korshak, "Ukraine Withdraws From Position South of Embattled Avdiivka as Kremlin Infantry Advances", Kyiv Post, 2024-02-16. https://www.kyivpost.com/post/28161 (확인 2026-10-13)
- Illia Novikov·Barry Hatton, "Ukraine to withdraw from Avdiivka, where outnumbered defenders held out for 4 months", AP(PBS NewsHour 전재), 2024-02-16. https://www.pbs.org/newshour/world/ukraine-to-withdraw-from-avdiivka-where-outnumbered-defenders-held-out-for-4-months (확인 2026-10-13)
- Yuri Zoria, "Commander: Ukrainian troops withdrew from Avdiivka", Euromaidan Press, 2024-02-17. https://euromaidanpress.com/2024/02/17/commander-ukrainian-troops-withdrew-from-avdiivka (확인 2026-10-13)
- Max Hunder, "Ukraine withdraws from two villages near Avdiivka", 로이터(Swissinfo 전재), 2024-02-28. https://www.swissinfo.ch/eng/ukraine-withdraws-from-two-villages-near-avdiivka/73100687 (확인 2026-10-13)
- 뉴욕타임스(Boston Globe 전재), "In chaotic retreat, hundreds of Ukrainian troops feared captured or missing", 2024-02-20. https://www.bostonglobe.com/2024/02/20/world/chaotic-retreat-hundreds-ukrainian-troops-feared-captured-or-missing (확인 2026-10-13)
- Igor Kossov, "Russia takes Avdiivka at steep price, as Ukraine forced to face shortcomings", The Kyiv Independent, 2024-02-18. https://kyivindependent.com/russia-takes-avdiivka-at-steep-price-as-ukraine-forced-to-face-shortcomings/ (확인 2026-10-13)
- Andrzej Wilk·Piotr Żochowski, "Ukrainian forces withdraw from Avdiivka. Day 726 of the war", OSW 동방연구센터, 2024-02-20. https://www.osw.waw.pl/en/publikacje/analyses/2024-02-20/ukrainian-forces-withdraw-avdiivka-day-726-war (확인 2026-10-13)
- Ryan N. Forte, "The Battle of Avdiivka and Its Lessons on Withdrawal Under Pressure", 웨스트포인트 현대전연구소(MWI), 2024-03-12. https://mwi.westpoint.edu/the-battle-of-avdiivka-and-its-lessons-on-withdrawal-under-pressure/ (확인 2026-10-13)
- Vlad Holovko·Diana Butsko·Anett Abramova, "Encirclement, captivity, executions, and retreat under air bombs. What is known about withdrawal from Avdiivka", hromadske, 2024-02-23. https://hromadske.ua/en/posts/encirclement-captivity-executions-and-retreat-under-air-bombs-what-is-known-about-withdrawal-from-avdiivka (확인 2026-10-13)
- Bohdan Ben, "Ukraine's Army Chief names the number of Ukrainian POWs during Avdiivka withdrawal", Euromaidan Press, 2024-03-30. https://euromaidanpress.com/2024/03/30/ukraines-army-chief-names-the-number-of-ukrainian-pows-during-avdiivka-withdrawal/ (확인 2026-10-13)
- 미 육군성, FM 3-90 Tactics, 2023-05-01(2장 2-82, 2-84항; 8장 8-43항; 11장 11-11, 11-72~11-92항). https://armypubs.army.mil/epubs/DR_pubs/DR_a/ARN38160-FM_3-90-000-WEB-1.pdf (확인 2026-10-13)
- Open-Meteo, Historical Weather API(ERA5 재분석), 아우디이우카 격자 일별 날씨 코드·기온·강수·적설·일출·일몰, 2024-02-01~20. https://archive-api.open-meteo.com/v1/archive?latitude=48.134&longitude=37.747&start_date=2024-02-01&end_date=2024-02-20&daily=weather_code,temperature_2m_max,temperature_2m_min,precipitation_sum,snowfall_sum,sunrise,sunset&timezone=Europe%2FKyiv (확인 2026-10-13)
- Open-Meteo, Elevation API, 아우디이우카 중심·코크스 공장·시에베르네·라스토치키네·토넨케·오를리우카·베르디치·오피트네·철도역 표고. https://api.open-meteo.com/v1/elevation?latitude=48.134,48.1725,48.1277,48.1484,48.1397,48.1635,48.1956,48.0966,48.1491&longitude=37.747,37.6996,37.6688,37.6817,37.6413,37.6451,37.6463,37.7193,37.7334 (확인 2026-10-13)
- OpenStreetMap Nominatim, 아우디이우카와 주변 마을 지명 검색. https://nominatim.openstreetmap.org/search?q=Avdiivka&format=json&limit=3&countrycodes=ua&namedetails=1 (확인 2026-10-13)
- OpenStreetMap Nominatim, 피우니치네(옛 시에베르네)의 name·old_name 태그. https://nominatim.openstreetmap.org/search?q=Pivnichne%20Ocheretyne&format=json&limit=1&countrycodes=ua&namedetails=1&extratags=1 (확인 2026-10-13)
- Fakty ICTV, 2024년 9월 19일 최고라다가 개명한 정착지 목록(우크라이나어), 2024-09-20. https://fakty.com.ua/ua/ukraine/20240920-yaki-mista-perejmenuvaly-v-ukrayini-spysok-novyh-nazv-dlya-ponad-300-mist-i-sil/ (확인 2026-10-13)
- 우크라이나 내각, 2010년 1월 27일 결의 제55호(우크라이나 문자 로마자 표기, 우크라이나어). https://zakon.rada.gov.ua/laws/show/55-2010-%D0%BF (확인 2026-10-13)
- Wikimedia Commons, File:Avdiivka coke plant in 2024.jpg(제47기계화여단, CC BY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vdiivka_coke_plant_in_2024.jpg (확인 2026-10-13)
- Wikimedia Commons, File:Avdiivka after Russian bombing, 2024-01-18 (01).jpg(우크라이나 국가경찰, CC BY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vdiivka_after_Russian_bombing,_2024-01-18_(01).jpg (확인 2026-10-13)
- Wikimedia Commons, File:Avdiivka Coke Plant after Russian shelling, 2023-10-19 (01).jpg(Oleksii Mazepa / ArmiyaInform, CC BY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vdiivka_Coke_Plant_after_Russian_shelling,_2023-10-19_(01).jpg (확인 2026-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