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사례 분석
홍길동 작전 (1967년 7–8월): 산악 기지 수렴 공격과 끊긴 흔적
· 1967-07-09 – 1967-08-26
개요(BLUF)
1967년 7월 9일, 주월한국군은 수도사단 4개 대대와 9사단 3개 대대로 푸옌성 뚜이호아 서북방 산악지대 '허브'를 향해 수렴 공격을 시작했다. 목표는 북베트남군 제5사단 예하 제95연대였다. 미 육군 공간사는 이 작전을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치른 최대 규모 작전으로 기록한다(출처 1, 2).
1단계에서 한국군은 하루 1~2km 이하로 꼼꼼히 전진해 적 중대 몇 개를 소규모 기지와 동굴에 가두었다. 그러나 95연대 주력은 포착하지 못했다. 8월 12일 시작한 2단계 수색도 적 사단 사령부와 188연대를 찾지 못했다. 그사이 95연대 잔존 병력은 뚜이호아 서쪽 산지에서 관측되지 않은 채 재편성했다. 이 작전은 산악 정글에서 포위의 빈틈과 접촉 상실이 작전 결과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보여 준다.
배경과 전략적 맥락
1967년 주월한국군은 중부 해안 평야의 안전 확보를 주로 맡고 있었다. 6월, 95연대는 기지 지역을 나와 뚜이호아 부근의 월남군과 한국군을 공격했다. 95연대의 전통적 은거지는 뚜이호아 서북쪽 산악지대 '허브'로, 1966년 11월 미군도 이곳을 공격한 적이 있다(출처 1, 2).
주월한국군사령부는 병력의 약 40%인 7개 대대를 이 작전에 넣고, 나머지 약 60%는 해안 평야 경계에 남겼다. 해안의 인구 밀집 지역을 지키는 임무를 버리지 않으면서 적 정규군을 산속에서 찾아 싸우려는 절충으로 보인다. 이 병력 배분은 이후 작전 기간과 종결 시점을 정하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
지형과 기상
작전 지역은 정글로 덮인 산악지대다. 도로는 거의 없고, 적은 소규모 기지와 동굴을 근거지로 삼았다. 송바강 계곡이 서쪽 꿍선에서 뚜이호아로 내려가고, 동쪽으로는 해안 평야가 펼쳐진다. 서북쪽 끼로 계곡은 푸옌–푸본 성 경계로 이어진다(그림 1).
정글 때문에 공중 관측은 거의 통하지 않았다. 적을 찾는 일은 결국 보병의 발에 달려 있었다. 높은 산이 무전을 가려 대대 사이 협조가 어려웠고, 탄약·식량·식수는 헬기 재보급에 의존했다. 미 제10전투항공대대는 7월 9일부터 8월 31일까지 두 사단을 직접지원했다(출처 3). 7~8월은 이 지역 우기 이전이지만, 작전 기간의 일일 기상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다.
사진 1. 꿍선 비행장(1967년 9월 20일). 9사단 3개 대대가 출발한 곳으로, 7~8월에 미 공병이 활주로와 주기장에 강판을 깔았다 — 사진: 미 육군 공병단 역사실(Office of History, USACE), 퍼블릭 도메인(미 연방정부 저작물), via Wikimedia Commons
양측 전력과 배치
- 한국군: 수도사단 4개 대대가 동째 남쪽에서 남동쪽으로, 9사단 3개 대대가 꿍선에서 북동쪽으로 공격했다. 월남군 제22사단 47연대 2개 대대가 동쪽 해안 평야 가장자리에서 차단 진지를 맡았다. B-52 폭격과 사단 포병, 미 육군 항공대대가 지원했다(출처 1, 3).
- 북베트남군: 제5사단 예하 95연대가 '허브' 일대에 있었다. 미 항공대대 보고서에 인용된 정보 판단은 서부 산악지대의 적을 약 1,800명으로 보았다(출처 3, 보고서 본문은 미확인). 5사단 사령부와 후방 시설은 서북쪽 끼로 계곡에, 188연대는 남쪽 푸옌–카인호아 성 경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경과
그림 1. 홍길동 작전 개략도(1967.7.9–8.26). 위치·경계·축척은 근사치이며 적 위치와 이동은 추정이다 — 자체 제작. 시나리오 지도 위에 출처 1–3의 경과를 재구성
- 수렴 공격과 기지 포위(7월 9일~하순): B-52 폭격으로 시작했다. 첫 접촉은 미미했다. 두 사단은 하루 1~2km 이하로 전진하며 적 중대 몇 개를 소규모 기지와 동굴에 가두었다.
- 허브 관통(7월 하순): 7개 대대 모두 '허브'를 지나 동쪽으로 소탕해 나갔다. 처음에는 저항이 강했으나 곧 거의 사라졌다.
- 접촉 상실(8월 초, 약 2주): 접촉이 거의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1단계는 진격 중 우회한 적 거점을 정리하며 끝났다(정리 날짜는 사료에 없음).
- 2단계 수색(8월 12~25일): 수도사단은 끼로 계곡을 따라 서북쪽으로 올라가 25일 오전 푸옌–푸본 성 경계에 이르렀지만 적 사령부도 후방 시설도 찾지 못했다. 9사단도 푸옌–카인호아 성 경계에서 188연대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 종결(8월 하순): 부대는 해안 기지로 돌아갔다. 한국 측 자료는 종료일을 8월 26일로 적는다(출처 2).
같은 시기 적은 뚜이호아 공군기지 옆 히에우쑤엉 군청 소재지를 기습하고 물러났다. 공간사 서술에서 이 기습 날짜는 '8월 9일'로 나오지만 앞뒤 서술 순서와 맞지 않는다(그림 2). 작전이 끝난 직후 95연대는 뚜이호아 서쪽 마을 일대에 다시 나타났고, 이후 몇 주간의 싸움에서 주민 피해와 대규모 피란이 발생했다(출처 1). 이 국면은 산악 작전 밖의 일로, 이 글과 시나리오는 다루지 않는다.
그림 2. 홍길동 작전 시간표. 점선 막대는 사료에 시작·종료일이 없어 근사치로 그린 구간이다 — 자체 제작. 출처 1–3 바탕
결심 포인트 분석
결심 1: 진격 속도(공격 부대 지휘부, 7월 9일)
B-52 폭격 직후 첫 접촉은 미미했고 적 연대의 위치도, 폭격의 효과도 알 수 없었다. 선택지는 (가) 하루 1~2km씩 훑으며 꼼꼼히 전진, (나) 추정 연대 기지에 헬기로 깊숙이 투입, (다) 폭격 효과를 확인할 때까지 정지·정찰, (라) 능선을 따라 빠르게 전진해 포위망을 일찍 닫기였다. 실제로는 (가)를 택했다. 흩어져 숨은 적을 상대로 빈틈없이 수색하면서 아군 손실을 줄이려는 판단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적 중대 몇 개를 가두었지만, 느린 템포는 적 주력에게 빠져나갈 시간도 주었다. 시나리오의 첫 결심이 이 지점이다.
결심 2: 기지와 동굴에 든 적(대대·연대, 7월 중순)
포위망 안에서 중대 규모의 적이 요새화된 기지와 동굴에 들어가 있었다. (가) 출구를 막고 화력으로 제압한 뒤 소탕, (나) 우회하고 진격 유지, (다) 즉시 동굴 돌입, (라) 항공 화력만 요청하고 이동이 가능했다. 사료는 적을 '가두었다'고만 적어 (가)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읽힌다. 일부 거점은 우회했다가 1단계 끝에 정리했다. 동굴 소탕 방법의 세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결심 3: 결전 회피와 분산(적 95연대 지휘부)
95연대는 (가) 기지를 지키며 결전, (나) 중대 단위로 흩어져 지연하다 이탈, (다) 해안 평야 쪽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일부 중대가 기지와 동굴에 갇힌 반면 연대 주력은 끝내 포착되지 않았고, 잔존 병력이 뚜이호아 서쪽 산지에서 재편성한 점으로 보아 (나)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포위망이 닫히기 전에 빠져나간 경로는 사료로 확인되지 않는다.
결심 4: 2단계 수색 방향(주월한국군사령부, 8월 12일)
2주 넘게 접촉이 없었고 95연대 주력의 행방은 몰랐다. (가) 적 사단 사령부를 찾아 서북쪽 끼로 계곡으로, (나) 해안 기지로 복귀해 뚜이호아 접근로 엄호, (다) 뚜이호아 서쪽 산지에서 소부대 수색으로 95연대 재탐색, (라) '허브'에 머물며 의심 지점에 화력 집중이 가능했다. 실제로는 (가)와 남쪽 성 경계 수색을 함께 택했다. 적 지휘·지원 시설을 치면 연대의 재기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두 방향 모두 목표를 찾지 못했고, 수색이 해안에서 멀어진 사이 적은 해안 가까운 산지에서 재편성했다. 시나리오의 2단계 결심과 마지막 종결 결심이 여기에 해당한다.
교훈
- 포위와 수색·공격(FM 3-90): 흩어진 적을 상대로 한 수렴 공격은 속도보다 빈틈 관리가 먼저다. 인접 부대와 진격 속도와 협조선을 맞추지 않으면 포위망은 적 일부만 가둔다.
- 화력과 결과 확인(FM 3-09): 한국군의 전과 보고는 대부분 포병·항공·B-52 화력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출처 2, 4). 정글에서 화력의 효과는 지상에서 확인해야 판단할 수 있다.
- 정보와 접촉 유지: 흔적이 끊긴 뒤 대부대를 움직이기 전에 적을 다시 찾아야 한다. 놓친 적이 어디로 향할지, 상급 의도가 지키려는 곳이 어디인지 함께 따져야 한다.
- 지속지원: 계곡이 깊어질수록 헬기 착륙지는 좁아지고 재보급 간격은 길어진다. 산악 수색의 범위는 보급 능력이 정한다.
- 임무형 지휘(ADP 6-0): 해안 경계라는 상급 의도 안에서 산악 작전의 범위와 종결 시점을 정하는 판단이 대대 이상 지휘관에게 요구됐다.
미확인 쟁점
- 적 손실 집계: 한국군 보고(700명 이상, 노획 화기 450정 이상)와 MACV 집계(사망 638명·포로 88명)가 다르다. 모두 한국군·연합군 측 주장이며 독립 검증되지 않았다(출처 1, 2, 4).
- 히에우쑤엉 군청 기습의 날짜(공간사 표기 8월 9일)는 서술 순서와 맞지 않아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
- 대대·중대 단위의 경과, 헬기 공중기동의 구체적 사례, 동굴 소탕 방법은 미 항공대대 보고서와 『파월한국군전사』 원문을 확인하지 못해 미확인이다.
- 85연대의 참가 여부는 위키백과만 적고 있어 확인되지 않았다.
- 미 육군 공간사(출처 1) PDF는 자동 접근이 막혀(403) 위키백과에 인용된 쪽수로 내용을 대조했다.
직접 지휘해 보고 싶다면 이 전투의 훈련 시나리오에서 공격 부대를 맡아 같은 결심을 내려 보자.
출처
- MacGarrigle, Combat Operations: Taking the Offensive, October 1966 to October 1967,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1998), pp. 311–314. https://history.army.mil/portals/143/Images/Publications/catalog/91-4.pdf (접속 2026-10-13, 자동 접근 403. 위키백과 인용 쪽수로 대조)
- Wikipedia, "Operation Hong Kil Dong" (교차확인용, 출처 1과 MACV 자료 인용).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Hong_Kil_Dong (접속 2026-10-13)
- 10th Combat Aviation Battalion, Combat After Action Report, Operation Hong Kil Dong (1967), DTIC AD0387534 (검색 요약만 확인, 본문 403). https://apps.dtic.mil/sti/pdfs/AD0387534.pdf (접속 2026-10-13)
- HQ MACV, "Review of significant events" (1967-08-20), p. 2, 텍사스공대 베트남센터 소장(위키백과 인용으로 확인). https://www.vietnam.ttu.edu/star/images/107/1070204003.pdf (접속 2026-10-13)
- U.S. Army, FM 3-90 Tactics, FM 3-09 Fire Support and Field Artillery Operations, ADP 6-0 Mission Command 목록. https://armypubs.army.mil/ (접속 2026-10-13)
- Wikimedia Commons, 꿍선 비행장 사진 파일 페이지(1967-09-20,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ung_Son,_September_1967.png (접속 2026-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