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사례 분석
심층 분석 | 노보다리우카·리우노필 돌파 — 같은 부대가 2주 만에 공격 방법을 어떻게 바꿨나
· 2023-06-04 – 2023-06-26
개요
1편: 노보다리우카·리우노필 (2023년 6월)이 두 가지 돌파 방식을 나란히 놓았다면, 이 글은 그 사이의 작은 결정들을 들여다본다. 2023년 6월 4일 새벽 우크라이나군 기계화여단은 UR-77로 지뢰지대에 통로 두 개를 열고 차량으로 노보다리우카에 들어가려 했지만 두 중대의 종대가 차례로 멈췄다[1]. 6월 중순 리우노필 앞 러시아군 중대 진지는 영토방위군(TDF) 돌격부대가 빌린 전차 두 대와 포대 하나로 적은 손실 속에 빼앗았다[1]. 같은 부대 무리가 같은 적을 상대로 2주 안에 방법을 바꾼 셈이다. 아래에서는 토양 수분·표고 같은 수치로 땅을 다시 읽고, 훈련 시나리오의 국면 p1~p8을 하나씩 따라가며 결심의 근거와 한계를 따진다.
사진 1. 훈련 중인 우크라이나군 MaxxPro MRAP(2022년 11월). 6월 4일 노보다리우카로 들어간 보병도 이 차량에 탔다. 노보다리우카 현장 사진은 아니다 — 사진: 아르미야인폼(우크라이나 국방부 통신사),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전략·작전 맥락
2023년 남부 공세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검토한 축은 여럿이었다. RUSI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마지막까지 남은 두 축은 오리히우–토크마크–멜리토폴 축과 벨리카노보실카–베르댠스크 축이었다. 두 축의 러시아군 방어 밀도는 비슷했지만, 뒤의 것은 훨씬 먼 거리를 가야 했다. 그래서 오리히우 축이 주공으로 정해졌다[2]. 노보다리우카·리우노필은 벨리카노보실카 남서쪽, 자포리자주와 도네츠크주 경계에 있다. OSM 좌표로 보면 벨리카노보실카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17km다[17]. 주공 축은 아니었지만 러시아군 예비대를 붙잡고 남쪽 프리유트네와 주방어선(수로비킨 선)을 위협하는 자리였다[1][9].
이 일대 전선은 공세 전 몇 달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2023년 초 러시아군의 공격은 동쪽 40–50km의 부흘레다르와 바흐무트에 쏠려 있었다[1]. 우크라이나군은 노보다리우카 북쪽 약 1km, 노보필 일대 수림선에 진지를 두었다. 이 선을 오래 지켜 온 TDF 여단에 5월 기계화여단과 다른 전선 여단이 증원됐다[1]. 상급 부대의 의도는 시나리오 작전명령과 같다. 노보다리우카와 리우노필의 러시아군 초기 전투진지를 깨고, 약 6km 남쪽 프리유트네와 주방어선을 향한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1].
공세 첫 2주 동안 남부에서 되찾은 땅은 작았다. 국방차관은 6월 19일 2주 동안 노보다리우카를 포함한 8개 마을, 113km²를 해방했다고 발표했다[6]. 같은 무렵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BBC 인터뷰에서 넓은 지뢰지대 때문에 전진이 바라는 것보다 느리다고 말했다[7]. 영국 국방정보부는 10월에 돌아보며, 여름 동안 이 벨리카노보실카 축에서 최소 125km²를 되찾았고 러시아 동부군관구 제36·5제병협동군 일부를 묶어 두었다고 평가했다[11]. 노보다리우카는 그 작은 전과의 첫 장면이었다.
지형·기상 정밀 분석(OAKOC)
그림 1. 노보다리우카·리우노필 돌파 상세도(개략·추정). 마을 범위와 개울·연못은 OSM 자료[17][18] 기준이다. 부대 위치와 규모는 RUSI 서술[1]을 바탕으로 한 추정이며 6월 26일까지만 나타낸다 — 자체 제작
관측·사계(O). Open-Meteo 고도 자료(약 90m 격자)로 보면 노보필 남쪽 수림선 일대는 해발 약 170m, 그 바로 남쪽 개울 바닥은 약 159m, 노보다리우카 마을은 155–165m다. 두 마을 사이에는 167–170m의 낮은 능선이 동서로 이어진다[16]. 높이 차는 10m 남짓이지만, 나무가 거의 없는 들판에서는 이 정도로도 사계가 갈린다. RUSI는 동서로 길고 좁은 폐허 마을이 러시아 중대에 동서 양쪽 접근로를 내려다보는 엄폐 진지를 주었다고 썼다[1]. 6월 4일 해 뜨는 시각은 04:37, 지는 시각은 20:26이었다[14]. 낮이 16시간 가까이 됐고, 공격 준비와 개척에 쓸 수 있는 밤은 짧았다.
접근로(A). OSM 경계로 보면 노보필 남쪽 끝과 노보다리우카 북쪽 끝 사이는 약 1.7km이고, RUSI는 우군 수림선이 마을 북쪽 약 1km에 있었다고 썼다[1][17]. 두 진지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지뢰지대가 가장 얇았다[1]. 노보다리우카와 리우노필의 중심 사이는 동서로 약 4.7km, 노보다리우카에서 프리유트네까지는 남쪽으로 약 6km다[17]. 리우노필 앞 러시아 중대 진지는 남북으로 이어진 우드블록(숲 덩어리) 접근을 쥐고 있었다. 이를 두고 지나가면 러시아 대전차조가 숲을 따라 측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1].
핵심 지형(K). 마을 안에서는 마을을 둘로 가르는 교차로와 동쪽 끝 농가가 핵심이었다[1]. 마을 밖에서는 서쪽 고지가 러시아 포병 관측자의 자리였다[1]. 다만 90m 격자 고도 자료에서는 마을 서쪽에 뚜렷한 고지가 보이지 않는다(155–161m)[16]. 격자로는 잡히지 않는 작은 둔덕이거나 위치가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림 1에서 위치를 추정으로 표시한 이유다.
장애물(O). 지뢰지대가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러시아군은 공세 전 교리상 지뢰지대 깊이를 120m로 잡고 있었다[1]. 여기에 날씨가 더해졌다. ERA5 재분석으로 5월 29–31일 이 격자에 29.6mm의 비가 왔고, 6월 1–10일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14]. 표토(0–7cm) 수분은 5월 31일 0.414m³/m³에서 6월 4일 0.315, 6월 10일 0.21로 떨어졌다[15]. 공격 날 땅은 마르는 중이었지만 아직 젖어 있었다. OSM에는 마을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개울과 작은 연못이 있다[18]. 통로는 높은 수림선에서 이 낮은 개울 바닥을 지나 다시 마을로 올라가야 했다. 지휘조가 "질척한 땅"을 두고 다툰 데에는 이런 지형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추정). 리우노필 남쪽 약 3km에는 발카(마른 골짜기)를 따라 농업용 둑으로 막은 연못이 사슬처럼 이어져 있다[18]. 러시아군이 6월 하순 폭파한 "농업용 둑"이 이것들로 보인다[1].
은폐·엄폐(C). 들판을 가르는 수림선과 우드블록이 유일한 은폐였다. 6월의 무성한 잎은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다. 서쪽 돌격조는 잎 때문에 무인기가 내려다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이용했다[1]. 반대로 우크라이나 지휘소가 기대던 무인기 영상도 같은 이유로 가려질 수 있었다.
편성과 지휘 관계
여단 이하 부대명과 중대 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RUSI는 교전 부대를 "기계화여단", "TDF 여단"으로만 적었다. "추정"은 RUSI 서술과 시나리오 가정에 기댄 것이다.
| 측 |
제대 |
부대·요소 |
역할·장비 |
근거 |
| 우크라이나 |
여단 |
자포리자 독립 영토방위여단(TDF) |
공세 전 수림선 방어, 6월 4일 해방 발표 |
[1][3][4] |
| 우크라이나 |
여단 |
기계화여단(부대명 미공개) |
돌파 선봉 |
[1] |
| 우크라이나 |
여단 |
또 다른 전선 여단, 인접 여단 |
리우노필 공격(인접 여단) |
[1] |
| 우크라이나 |
중대 |
선두 중대 |
MaxxPro MRAP 탑승, 전차 2대 선도 |
[1] |
| 우크라이나 |
중대 |
후속 중대 |
서쪽 통로, 차량 전부 지뢰에 정지 |
[1] |
| 우크라이나 |
공병 |
UR-77 2대 |
폭 6m 통로 2개 개척 |
[1] |
| 우크라이나 |
소대·조 |
SPG-9 무반동총조 |
측방에서 러시아 전차 대응 |
[1] |
| 우크라이나 |
소대 |
돌격조 2개(소대 규모) |
잔해 따라 1개, 서쪽 사각지대 1개 |
[1] |
| 우크라이나 |
화력 |
M777 포대들(북서쪽) |
준비사격, 대포병 우세 |
[1] |
| 우크라이나 |
무인기 |
개조 농업용 무인기 |
야간 RPG 투하, 예비대 약화 |
[1] |
| 우크라이나 |
TDF 돌격부대 |
소대 규모 2개 이상, 전차 2(차용), 포대 1 |
리우노필 앞 진지 공격 |
[1] |
| 우크라이나 |
공병 |
장애물 극복 차량 1대 |
수로 앞에서 전진 정지 |
[1] |
| 러시아 |
군 |
제58제병협동군(RUSI). 영국 국방정보부는 이 축에 동부군관구 제36·5군 일부를 언급 |
방어 책임 |
[1][11] |
| 러시아 |
중대 |
노보다리우카 1, 리우노필 1, 두 마을 사이 1 |
초기 전투진지 |
[1] |
| 러시아 |
예비 |
기갑을 포함한 예비(전차 중대 1개가 우드블록에) |
역습, 측방 사격 |
[1] |
| 러시아 |
전차 |
2대 + 2대 |
종대 측방 사격(위치 추정) |
[1] |
| 러시아 |
관측 |
포병 관측자 |
서쪽 고지 |
[1] |
| 러시아 |
대전차 |
수림선마다 발사기 약 4기, 미사일 약 50발 |
6월 하순 수로 너머 차단선 |
[1] |
지휘 관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투 통제의 위치다. RUSI는 우크라이나군에 공격을 이끌 수 있는 숙련 하급 지휘자가 부족해 전투 관리가 경험 많은 상급 제대로 올라가고, 이것이 임무형 지휘를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리우노필 공격이 그 예로 꼽혔다[1]. 대대마다 돌격을 이끌 수 있다고 인정받는 병력이 약 두 개 소대뿐이라는 평가도 있다[1]. 노보다리우카에서 결국 상황을 바꾼 것이 소대 규모 돌격조였다는 점과 맞물린다.
시간대별 경과
5월 하순 ~ 6월 3일: 준비사격
M777 포대들이 북서쪽에 사격 진지를 두고 준비사격을 시작했다. 평소 우크라이나 곡사포는 사격 뒤 2–15분 안에 진지를 옮겨야 했지만, 이번에는 러시아 포병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 그럴 필요가 적었다. 몇 달 만에 포탄도 요청하는 대로 보급됐다[1]. 낮에는 정찰 무인기가 러시아 진지를 찾고 밤에는 RPG를 단 농업용 무인기가 공격했다. 한 번은 무인기 5대가 우드블록의 전차 중대를 공격해 7대를 파괴하거나 크게 손상시켰고, 무인기는 모두 잃었다[1]. 러시아 전자전이 켜져 있으면 이 방법은 쓸 수 없었다.
6월 3일 저녁: 공격 결심
비 온 뒤 땅이 질척하다는 문제를 두고 지휘조 안에서 논쟁이 있었지만, 공격하기로 했다. 목표는 진지 사이가 가까워 지뢰가 덜 촘촘한 곳을 뚫고 마을로 들어가는 것이었다[1].
6월 4일 새벽: 동쪽 통로
UR-77 두 대가 가장 좁은 구간에 폭 6m 통로 두 개를 냈다. 전차 두 대가 이끄는 MaxxPro 종대가 포병 엄호 아래 동쪽 통로로 들어갔다. MRAP 몇 대가 전차 궤도 자국에 빠졌고, 좁은 통로에서 뒤 차량이 돌아갈 수 없었다. 종대가 다 들어온 그때 러시아 전차 두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전차가 약 800m에서 응사했지만 종대 차량은 차례로 멈췄다. 일부 분대가 마을 어귀에 닿았고, SPG-9가 측방에서 러시아 전차를 무력화한 뒤에야 사상자를 뒤로 옮길 수 있었다[1].
6월 4일 낮: 서쪽 통로
후속 중대가 서쪽 통로로 들어갔다. 땅은 더 단단했다. 그러나 종대가 다 들어오자 러시아 전차 두 대가 빠르게 다가오며 사격했다. 지휘소는 무인기 영상으로 이를 보고 포병으로 교란했다. 노출된 중대는 속도를 올리다 경로를 벗어났고, 차량 전부가 차례로 지뢰에 걸려 멈췄다. 러시아 포병이 종대를 조준했고, 하차 보병은 다시 마을 외곽과 출발선으로 나뉘었다[1].
6월 4일 ~ 5일: 발판 넓히기
러시아군은 동쪽 농가의 거점과 중앙 도로변 진지로 물러났다. 지휘관은 화력을 피해 흩어질 땅이 필요하다고 보고 돌격조 둘을 보냈다. 한 조는 멈춘 차량을 엄폐물 삼아 통로를 따라갔고, 다른 조는 러시아군 재배치로 생긴 서쪽 사각지대를 지나 교차로를 쳤다. 러시아군은 고립을 피해 동쪽으로 물러났다[1]. TDF 여단은 나중에 이날을 해방일로 발표했다[3][5].
6월 5일 ~ 11일께: 마을 전투와 서쪽 고지
마을 안 전투는 일주일 더 이어졌다. 동쪽 농가는 버텼지만 더는 다른 접근로를 내려다보지 못했다. 첫 새 목표는 러시아 포병 관측자가 있던 서쪽 고지였다[1]. 6월 11일 타우리아 작전집단 대변인은 러시아군이 노보다리우카 근처 둑을 폭파해 모크리 얄리강 기슭이 잠겼다고 주장했다[4][5].
6월 12일 ~ 19일: 발표와 다음 목표
6월 12일 TDF 여단이 노보다리우카 해방을 발표했다. 이때 국방부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3]. 6월 19일 국방차관이 노보다리우카를 해방 마을 목록에 넣었다[6]. 그 사이 다음 목표는 리우노필 앞 중대 진지로 옮겨졌다. 정확한 공격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다.
6월 중순: 리우노필 앞 중대 진지
포병 준비사격 뒤 빌린 전차 두 대가 엄폐물을 드나들며 진지를 쏘았고, 그 앞에 연막을 쳐 보병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동쪽 수림선의 소대 규모 부대가 제압사격을 하며 둘씩 전진했다. 이어 포병의 강한 일제사격이 곧 있을 측방 돌격을 '예고'했다. 러시아군이 동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이, 서쪽 측방으로 침투한 소대가 엷어진 진지에 빠르게 닿았다. 러시아군은 통신 장비를 버리고 리우노필로 물러났고 다섯 명이 포로가 됐다. 진지는 러시아 포병에 좌표가 등록돼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포탄이 떨어지기 전에 그 너머로 나아가야 했다[1].
6월 하순: 리우노필
중대 진지가 무너지자 리우노필의 러시아군은 병력을 다시 나눠야 했다. 인접 여단이 며칠에 걸쳐 마을을 공격했다[1]. 6월 25일에는 리우노필 근처에서 러시아 장갑차량 종대를 타격했다는 보도가 있었다[8]. 6월 26일 국방차관이 리우노필 탈환을 발표했고[8], ISW는 공식 발표와 위치가 확인된 영상을 근거로 이를 확인했다[10]. 러시아군은 수로 너머로 물러나 농업용 둑 몇 곳을 폭파하고, 수림선마다 대전차 진지를 폈다. 장애물 극복 차량이 한 대뿐이던 우크라이나군은 멈춰 얻은 땅을 다졌다[1]. 6월 24–26일에는 다시 32mm 넘는 비가 왔다[14].
결심 포인트 심층
훈련 시나리오의 국면을 그대로 따른다. p2x와 p7x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가정 국면이다(그림 2).
그림 2. 결심 지점과 땅의 상태. 강수량과 표토 수분은 ERA5 재분석 격자값이다[14][15]. 결심 시각은 훈련 시나리오 설정이다 — 자체 제작
p1 돌파할 것인가 (6월 3일 저녁)
- 알던 것: 포병 우세를 쥐었고 포탄 보급도 원활했다. 러시아군은 기갑을 포함한 예비를 갖고 있었지만 위치와 규모는 몰랐다. 무인기가 전차 중대 하나를 크게 약화했지만 그것이 예비 전부인지는 불확실했다. 땅은 젖어 있었다.
- 선택지: UR-77 통로 2개와 전차 선도 MRAP 종대의 승차 돌파 / 야간 도보 침투로 마을 어귀 먼저 확보 / H시 몇 시간 연기 / 노보다리우카는 양공, 주공은 다른 곳.
- 실제 결심과 결과: 승차 돌파를 택했다. 통로는 열렸지만 종대는 멈췄다[1].
- 다른 선택이었다면: 연기하면 땅은 조금 나아졌을 것이다. 표토 수분은 하루 약 0.01–0.02씩 떨어지고 있었다[15]. 그러나 포병 우세는 러시아 포병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유효했다. 야간 도보 침투는 FM 3-90이 말하는 은밀 개척에 가깝다. 다만 6월 초 밤은 7시간 남짓이었고[14], 1km를 건너 소대 이상을 모으기에는 짧았다. 양공은 바로 앞에 있는 가장 얇은 지뢰지대라는 유일한 이점을 버리는 선택이었다.
p2 통로 안의 종대 (6월 4일 새벽)
- 알던 것: 선두 MRAP 몇 대가 빠졌고 통로는 막혔다. 러시아 전차 두 대가 약 800m에서 사격 중이었다. SPG-9조가 수림선 서쪽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선택지: 전차 응사를 유지하며 SPG-9를 측방으로 / 종대 후진 / 포병과 연막 / 전원 하차해 도보 전진.
- 실제 결심과 결과: 전차가 응사했지만 종대 차량은 차례로 멈췄다. 결국 SPG-9가 측방에서 러시아 전차를 무력화했다[1].
- 다른 선택이었다면: 폭 6m 통로에서 후진은 뒤 차량을 지뢰밭으로 밀어낸다. RUSI 2024년 보고서는 같은 시기 오리히우 축에서도 돌아서거나 비켜 가려던 차량이 지뢰에 걸린 사례가 되풀이됐다고 썼다[2]. 연막은 효과가 컸겠지만 우크라이나 포병 사격 가운데 연막은 3%뿐이었다[1].
p2x 지뢰지대에 묶인 보병 (6월 4일 오전, 가정)
- 알던 것(가정): 멈춘 차량이 통로를 막고 하차 보병 다수가 지뢰지대에 엎드려 있다. 소대 하나가 마을 어귀를 잡았다는 보고가 있지만 무전이 엇갈린다.
- 선택지: SPG-9로 적 전차를 치고 그 엄호로 부상자 후송, 어귀 소대는 유지 / 연막 뒤에서 멈춘 차량 견인 / 지뢰지대 병력 전원을 어귀로 전진.
- 실제와 비교: 실제로 일부 보병은 지뢰지대에 묶였고, SPG-9가 전차를 무력화한 뒤에야 후송이 가능했다[1]. 시나리오의 권고도 이 순서다. 위협을 먼저 없애고 사람을 뺀다. 견인은 사격 아래 공병을 더 들이는 일이고, 전원 전진은 보지 못한 지뢰를 밟을 위험을 키운다.
p3 마을 어귀의 고립된 소대 (6월 4일 오전)
- 알던 것: 소대 하나가 마을 끝에 매달려 있었다. 뒤의 들판은 사격에 노출돼 있었다. 후속 중대는 수림선에 있었고, 공병은 서쪽 통로가 더 단단해 보인다고 했다.
- 선택지: 후속 중대를 서쪽 통로로 승차 투입 / 화력으로 소대를 지키고 밤에 증원 / 동쪽 통로로 도보 증원.
- 실제 결심과 결과: 후속 중대를 서쪽 통로로 보냈다. 목표 진전과 소대 증원이라는 두 요구가 겹쳤다[1].
- 다른 선택이었다면: 밤까지 기다리기에는 낮이 너무 길었다. 해 질 녘은 20:26이었다[14]. 소대가 그동안 버틴다는 보장이 없었다. 도보 증원은 시간이 걸렸지만, 실제로 이 판을 바꾼 것은 결국 도보 돌격조였다(p5).
p4 서쪽 통로의 두 번째 종대 (6월 4일 낮)
- 알던 것: 종대가 다 들어온 순간 무인기 영상에 러시아 전차 두 대가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이 잡혔다. 포병은 사격 요청을 기다리고 있었다.
- 선택지: 무인기 영상으로 포병을 부르고 종대는 계속 전진 / 정지 후 배속 전차로 교전 / 즉시 하차 / 수림선으로 철수.
- 실제 결심과 결과: 지휘소가 포병으로 교란했고, 중대는 속도를 올리다 경로를 벗어나 전 차량이 지뢰에 멈췄다[1].
- 다른 선택이었다면: 두 번 모두 러시아 전차는 종대가 "다 들어온 뒤" 나타났다[1]. 우연이 아니라 방어자의 방식이었다. RUSI는 러시아군이 지뢰에 묶인 우크라이나 차량을 기갑으로 공세적으로 측방 공격하고, 그 전차를 자주 잃더라도 지뢰 때문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큰 피해를 준다고 정리했다[1]. 정지해 교전했다면 경로 이탈은 막았겠지만 정지한 종대가 포병 표적이 됐을 것이다. 통로 끝을 먼저 확보하는 것, 곧 SOSRA의 "확보"가 빠져 있었다.
p5 발판 넓히기 (6월 4–5일)
- 알던 것: 우군은 좁은 발판에 몰려 포병의 좋은 표적이었다. 러시아군은 동쪽 농가와 중앙 도로변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서쪽 소대는 새 진입로를 찾았다고 보고했다.
- 선택지: 소대 규모 돌격조 둘(잔해 따라, 서쪽 사각지대로 교차로) / 발판에 참호를 파고 밤까지 대기 / 중앙 도로를 따라 농가 정면 공격 / 화력만으로 제압.
- 실제 결심과 결과: 돌격조 둘을 보냈다. 서쪽 조는 잎 때문에 무인기도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지나 교차로를 쳤고, 러시아군은 고립을 피해 동쪽으로 물러났다[1].
- 다른 선택이었다면: 참호를 파고 기다리는 선택은 몰려 있는 병력을 계속 포격 아래 둔다. 중앙 도로 정면 공격은 러시아군이 막 자리 잡은 곳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서쪽 사각지대는 계획에 없었다. 적의 재배치가 만든 틈을 현장 소대가 읽었다.
p6 동쪽 농가와 서쪽 고지 (6월 5–11일께)
- 알던 것: 서쪽 끝과 교차로를 잡았다. 동쪽 농가는 버티지만 더는 다른 부대 접근로를 내려다보지 못했다. 서쪽 고지에서는 러시아 관측자가 포병을 부르고 있었다.
- 선택지: 농가는 봉쇄하고 서쪽 고지 먼저 / 농가를 건물 단위로 소탕 / 정비·휴식 / 리우노필 방향 정찰 먼저.
- 실제 결심과 결과: 서쪽 고지를 먼저 쳤다. 농가는 리우노필 쪽 공격으로 고립될 때까지 버텼다[1].
- 다른 선택이었다면: 농가 소탕은 위협이 이미 줄어든 곳에 한정된 병력을 쏟는 일이었다. 관측자를 그대로 두면 정비와 휴식 중인 부대가 계속 포격을 받는다. 위협의 크기에 따라 순서를 정한 결심이다.
p7 리우노필 앞 중대 진지 (6월 중순)
- 알던 것: 진지를 두고 지나가면 우드블록을 따라 대전차조가 측방으로 올 수 있었다. 가진 것은 TDF 돌격부대와 빌린 전차 2대, 포대 1개였다. 노보다리우카에서 장비 "2개 중대분"을 잃었고, 이런 손실률로는 수로비킨 선까지 갈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1].
- 선택지: 정면 고정·동쪽 양공·서쪽 침투 / 빌린 전차로 승차 돌파 / 우회하고 경계 / 공병 장비 대기.
- 실제 결심과 결과: 고정·기만·침투를 묶었다. 러시아군은 동쪽 돌격을 예상하고 서쪽을 비웠고, 서쪽 소대가 진지에 닿자 물러났다. 손실은 경미했다[1].
- 다른 선택이었다면: 승차 돌파 반복은 남은 전차 두 대를 걸어야 했다. 우회는 RUSI가 말한 측방 대전차 위협을 그대로 남긴다. 기다리면 러시아군도 진지를 보강한다. 이 공격은 노보다리우카의 교훈을 거꾸로 적용한 것이다. 적이 기대하는 그림을 보여 주고, 다른 곳에서 친다.
p7x 기만이 읽혔다면 (6월 중순, 가정)
- 알던 것(가정): 공격이 진지 앞에서 멈췄다. 돌격조가 수림선 끝에 묶였고 우드블록에서 대전차조가 움직인다는 보고가 있다. 빌린 전차 두 대는 아직 쓸 수 있다.
- 선택지: 돌격조를 수림선으로 물리고 해 질 녘 같은 원리로 다시 / 공격 중지 / 남은 화력을 모두 쏟고 정면 돌파.
- 실제와 비교: 실제로는 기만이 통했다[1]. 시나리오의 권고는 같은 원리를 다시 쓰는 것이다. FM 3-90도 한 번의 양공이 원하는 효과를 내지 못할 수 있으며, 되풀이되는 양공이 필요할 수 있다고 쓴다[13]. 정면 돌파는 남은 전차 두 대를 잃을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p8 적의 표적이 된 참호 (6월 중하순)
- 알던 것: 러시아 중대 진지가 무너졌다. 버려진 참호에는 통신 장비가 남아 있었지만, 그 좌표는 러시아 포병에 등록돼 있었다. 인접 여단이 리우노필 공격을 준비했다. 리우노필 뒤에는 수로가 있었고 장애물 극복 차량은 한 대였다.
- 선택지: 포탄이 떨어지기 전에 빨리 너머로 나아가고 리우노필은 인접 여단에 / 참호 점령·정비 / 돌격부대로 리우노필까지 추격 / 노획 장비만 챙겨 복귀.
- 실제 결심과 결과: 진지 너머로 빨리 나아갔다. 러시아군은 리우노필에서 재배치해야 했고 인접 여단이 며칠에 걸쳐 마을을 잡았다[1]. 6월 26일 공식 발표와 영상 확인이 나왔다[8][10].
- 다른 선택이었다면: 참호 점령은 등록된 포격 아래로 들어가는 일이다. 추격은 TDF 돌격부대의 규모를 넘는다. 그런데 그 뒤의 러시아 대응이 흥미롭다. RUSI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잃은 진지에 포격을 등록해 두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보고, 진지에 폭약을 미리 설치해 우크라이나 보병이 들어오면 터뜨리는 방식으로 바꿨다[1].
사진 2. 우크라이나군 SPG-9 무반동총(2024년 8월, 차시우야르 일대). 6월 4일 측방에서 러시아 전차를 막은 것도 이 무기였다. 노보다리우카 현장 사진은 아니다 — 사진: 우크라이나군 제24기계화여단,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교리로 다시 읽기
돌파(FM 3-90, 2장 2-36·2-37항). 미 육군 FM 3-90(2023)은 돌파를 좁은 정면에 대한 공격으로 정의하고, 돌파 지점에 압도적 전투력을 모으며 적 예비대와 장거리 화기를 제자리에 묶으라고 쓴다. 편성은 개척조·지원조·돌격조·예비로 나눈다[13]. 6월 4일 공격은 좁은 정면을 골랐다는 점에서 이 원칙과 맞다. 그러나 예비 기갑을 "제자리에 묶는" 일은 무인기 공격에 맡겼다. 그 결과가 두 번 모두 종대가 다 들어온 뒤 나타난 러시아 전차였다.
개척 원칙(FM 3-90, 18장 18-22·18-23항). 방어되는 장애물 개척은 제압·차장·확보·개척·돌격(SOSRA)을 따른다[13]. 6월 4일에는 포병 제압과 UR-77 개척이 있었다. 연막 차장이 없었고, 통로 끝을 지키는 확보 부대도 없었다. 차량 한 대가 멈추면 통로 전체가 막혔다는 점도 같은 문제다. RUSI 2024년 보고서는 오리히우 축에서도 장약 통로가 충분히 깊지 않았고, 경험 없는 승무원이 개척로를 벗어났으며, 지뢰 쟁기는 대개 선두 차량에만 있었다고 썼다[2]. 같은 장 18-21항의 은밀 개척은 시야가 나쁠 때 들키지 않고 통로를 여는 방법이다. 시나리오 p1의 야간 침투 방책이 여기에 해당한다[13].
침투(FM 3-90, 2장 2-82·2-83항). 교범은 침투를 적 점령 지역을 들키지 않고 지나는 기동으로 정의한다. 침투 부대만으로 적을 격파하는 일은 드물어 다른 기동과 함께 쓴다고 강조한다. 침투 목적 가운데 하나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적 진지를 공격하는 것을 든다[13]. 리우노필 앞 서쪽 소대가 바로 이 역할이었고, 혼자가 아니라 고정·양공과 함께였다.
양공(FM 3-90, 19장 19-37·19-38·19-43항). 양공은 공격 장소나 시간을 속이려고 실제로 적과 접촉하는 기만이다. 목표를 제한하고, 적을 주공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지원 화력을 양공 쪽으로 돌리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13]. 동쪽 소대는 실제로 사격하며 둘씩 전진했고 포병 일제사격이 이를 뒷받침했다. 러시아군은 자리를 옮겼다[1]. 교범의 정의와 거의 그대로 맞는다.
러시아 쪽 원칙. 러시아 교범 원문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해 RUSI의 관찰로 대신한다. 첫 방어대는 교란지대로 운용돼 일부 진지에서 먼저 물러난 뒤 역습했다[2]. 잃은 진지에는 포격을 미리 등록했다. 기갑 예비로 지뢰에 묶인 상대를 측방에서 쳤다[1]. 6월 초 교전 뒤에는 지뢰지대 깊이를 120m에서 최대 500m로 늘리고, 대전차지뢰를 두 개씩 겹쳐 묻기 시작했다[1].
그림 3. 노보다리우카·리우노필 국면별 기동(18초 반복). 움직임 줄이기 설정에서는 최종 상황만 보인다. 위치는 개략·추정이다 — 자체 제작
사료 비판
노보다리우카는 언제 해방됐나. TDF 여단은 6월 12일 페이스북에 6월 4일 해방됐다고 썼다. 그때 국방부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3][4][5]. RUSI는 6월 4일 이후에도 마을 전투가 일주일 더 이어졌고 동쪽 농가가 버텼다고 쓴다[1]. 국방차관은 6월 19일에야 이 마을을 공식 목록에 넣었다[6]. 셋을 함께 놓으면, 6월 4일은 마을에 발판을 만든 날이고 마을 전체를 잡은 것은 열흘쯤 뒤로 보는 편이 맞다. 여단의 발표는 교전 당사자의 것이고, RUSI는 참가자 증언과 노획 문서, 비공개 영상을 바탕으로 했다[1]. 세부 경과는 RUSI 쪽이 더 믿을 만하다.
전진 속도. RUSI는 본문에서 "사흘 전투에 한 번, 한 번에 약 700–1,200m"라고 썼고[1], 같은 보고서 요약에서는 "닷새마다 약 700–1,200m"라고 썼다[1]. 2주에 두 마을이라는 사실은 같다. 본문은 이 사례 하나를, 요약은 공세 전반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누구였나. RUSI는 노획 지도를 근거로 이 방어를 제58제병협동군 예하로 본다[1]. 영국 국방정보부는 여름 동안 벨리카노보실카 축이 동부군관구 제36·5군 일부를 묶어 두었다고 평가했다[11]. 노보다리우카는 두 군관구 책임 지역의 경계 근처에 있다. 둘 다 맞을 수 있다. 다만 중대급 진지가 어느 군 소속이었는지는 노획 지도를 직접 본 RUSI 쪽이 더 구체적이다.
둑은 어디서 터졌나. 타우리아 작전집단 대변인은 6월 11일 러시아군이 노보다리우카 근처 둑을 폭파해 모크리 얄리강 기슭이 잠겼다고 주장했다[4][5]. 그런데 OSM에서 모크리 얄리강은 노보다리우카에서 동쪽으로 10km 넘게 떨어져 있다[18]. RUSI가 말한 둑 폭파는 6월 하순 리우노필 뒤의 일이다[1]. 두 사건이 따로 있었을 수도 있고, 6월 11일 발표의 지명이 넓은 지역을 가리켰을 수도 있다. 이번 자료로는 가릴 수 없다.
손실. RUSI는 첫 전진에 "2개 중대분의 장비"가 들었고 리우노필 공격의 손실은 경미했다고만 적었다. 공세 전체의 손실은 민감하다는 이유로 다루지 않았고, 보고서는 출간 전 우크라이나군의 검토를 거쳤다[1]. 같은 보고서는 서방 제공 차량 덕에 장비 손실이 인명 손실로 크게 이어지지 않았고, 차량은 파괴보다 기동 불능이 많았다고 덧붙였다[1]. 그러니 "2개 중대분"은 회수와 수리가 가능했던 차량을 포함한 수치로 읽어야 한다. 러시아 측은 이 교전을 대체로 성공으로 봤다. 그러면서도 포병과 전차 손실이 컸고, 인명 손실은 오래 이어지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1].
면적. 국방차관은 6월 19일 남부 전체 113km²[6], 6월 26일 보도는 130km²를 언급했다[8]. 영국 국방정보부는 여름 동안 이 축에서만 최소 125km²로 평가했다[11]. 범위와 시점이 서로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교훈
- 통로는 폭이 아니라 막힘으로 실패한다. 폭 6m 통로에서는 차량 한 대가 멈추면 중대 전체가 선다. 통로마다 견인·회수 수단과 통로 끝을 지키는 확보 부대를 함께 계획해야 한다.
- 숨은 예비는 종대가 다 들어온 뒤 나타난다. 두 번의 정지는 같은 방식으로 일어났다. 첫 실패 뒤 두 번째 투입 전에 적 예비 전차를 찾아 묶는 일이 먼저였다.
- 연막은 지휘소의 눈과 맞바꾸는 것이다. RUSI는 지휘관들이 무인기 영상을 지키려고 연막을 아꼈다고 본다. 리우노필에서는 그 연막이 기만의 핵심이었다.
- 소대가 판을 바꾼다. 두 번 모두 상황을 연 것은 차량 종대가 아니라 사각지대를 읽은 소대였다. 숙련 돌격 소대는 대대에 둘뿐인 자원이므로 그 쓰임을 아껴야 한다.
- 같은 원리를 다시 쓸 줄 알아야 한다. 고정·기만·침투는 한 번 실패해도 다시 쓸 수 있는 원리다. 같은 방법을 되풀이하는 것과는 다르다.
- 진지를 빼앗은 뒤가 더 위험하다. 적이 좌표를 등록해 둔 참호에 머물지 말고 빨리 지나가야 한다.
미확인 쟁점
- 기계화여단과 인접 여단의 부대명, 중대 수와 정확한 배치.
- 6월 4일 각 종대의 차량 수와 출발·정지 시각.
- 두 번째 러시아 전차 두 대가 나타난 방향(그림 1은 추정).
- 서쪽 고지의 정확한 위치. 90m 격자 고도 자료로는 뚜렷한 고지가 보이지 않는다.
- 리우노필 앞 중대 진지 공격의 날짜와 TDF 돌격부대의 규모.
- 6월 11일 둑 폭파 주장과 6월 하순 둑 폭파가 같은 사건인지.
- 양측의 인명 손실은 공개되지 않았다.
더 보기
▶러시아군이 깔아 둔 넓은 지뢰지대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늦추고 있다는 BBC 뉴스 보도영상: 러시아 지뢰지대에 막힌 우크라이나 반격(우크라이나 대통령 인터뷰 포함) · BBC News, 2023
사진 3. 우크라이나군 제406포병여단의 M777(2023년 3월). 노보다리우카 공격 전 북서쪽에서 준비사격을 한 것도 M777 포대들이었다. 현장 사진은 아니다 — 사진: 아르미야인폼(우크라이나 국방부 통신사),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 RUSI, Stormbreak(2023) — 이 글의 1차 근거. 러시아군의 적응(지뢰지대 깊이, 진지 폭파, 측방 대전차조)도 다룬다[1].
- RUSI, Preliminary Lessons from Ukraine's Offensive Operations, 2022–23(2024) — 같은 시기 오리히우 축 개척 실패와 비교[2].
- 미 육군 FM 3-90 Tactics(2023) 2·18·19장 — 돌파, 침투, 개척 원칙, 양공[13].
- 훈련 시나리오 '노보다리우카 돌파'에서 돌격부대 지휘관이 되어 p1~p8을 직접 결심해 보자.
출처
- Jack Watling·Nick Reynolds, Stormbreak: Fighting Through Russian Defences in Ukraine's 2023 Offensive, RUSI Special Report, 2023-09-04, pp. 1–2, 3–4, 5–14, 15–18, 20–23. https://static.rusi.org/Stormbreak-Special-Report-web-final_0.pdf (접속 2026-10-14)
- Jack Watling·Oleksandr V Danylyuk·Nick Reynolds, Preliminary Lessons from Ukraine's Offensive Operations, 2022–23, RUSI Special Report, 2024-07-18, pp. 15–17, 19–20, 33. https://static.rusi.org/lessons-learned-ukraine-offensive-2022-23.pdf (접속 2026-10-14)
- Yuri Zoria, "Zaporizhzhia's Novodarivka village liberated – Territorial Defense Forces", Euromaidan Press, 2023-06-12. https://euromaidanpress.com/2023/06/12/zaporizhzhias-novodarivka-village-liberated-territorial-defense-forces (접속 2026-10-14)
- Ukrinform, "Ukrainian defenders liberate village of Novodarivka", 2023-06-12. https://www.ukrinform.net/rubric-ato/3721693-ukrainian-defenders-liberate-village-of-novodarivka.html (접속 2026-10-14)
- Rubryka, "Ukrainian army makes progress in southeastern Zaporizhzhia region, liberating village of Novodarivka", 2023-06-12. https://rubryka.com/en/2023/06/12/zsu-zvilnyly-vid-rosiyan-novodarivku/ (접속 2026-10-14)
- Novaya Gazeta Europe, "Ukraine's Defence Ministry confirms liberating Piatykhatky village in Zaporizhzhia region", 2023-06-19. https://novayagazeta.eu/en/articles/2023/06/19/ukraines-defence-ministry-confirms-liberating-piatykhatky-village-in-zaporizhzhia-region-en-news (접속 2026-10-14)
- Ukrainska Pravda,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BBC 인터뷰 보도(지뢰지대와 반격 속도), 2023-06-21. https://www.pravda.com.ua/eng/news/2023/06/21/7407843/ (접속 2026-10-14)
- Novaya Gazeta Europe, "Ukraine liberates Rivnopil in Donetsk region", 2023-06-26. https://novayagazeta.eu/en/articles/2023/06/26/ukraine-liberates-rivnopil-in-donetsk-region-en-news (접속 2026-10-14)
- Espreso, "Defense Express expert explains importance of liberating Rivnopil for counteroffensive", 2023-06-26. https://global.espreso.tv/defense-express-expert-explains-importance-of-liberating-rivnopil-for-counteroffensive (접속 2026-10-14)
- Yuri Zoria, "Ukraine advanced on at least two sectors of the front on June 26 – ISW", Euromaidan Press, 2023-06-27. https://euromaidanpress.com/2023/06/27/ukraine-advanced-on-at-least-two-sectors-of-the-front-on-june-26-isw (접속 2026-10-14)
- Ukrainska Pravda, 영국 국방정보부 10월 8일 평가 보도(벨리카노보실카 축), 2023-10-08. https://www.pravda.com.ua/eng/news/2023/10/08/7423134/ (접속 2026-10-14)
- Seth G. Jones·Alexander Palmer·Joseph S. Bermudez Jr., "Ukraine's Offensive Operations: Shifting the Offense-Defense Balance", CSIS, 2023-06-09. https://www.csis.org/analysis/ukraines-offensive-operations-shifting-offense-defense-balance (접속 2026-10-14)
- Headquarters, Department of the Army, FM 3-90 Tactics, 2023-05-01(2장 2-36·2-37·2-82·2-83항, 18장 18-21
18-23항, 19장 19-3719-43항). https://armypubs.army.mil/epubs/DR_pubs/DR_a/ARN38160-FM_3-90-000-WEB-1.pdf (접속 2026-10-14)
- Open-Meteo, Historical Weather API(ERA5 재분석), 노보다리우카 격자 2023-05-28~06-26 일별 기온·강수·일출몰. https://archive-api.open-meteo.com/v1/archive?latitude=47.781&longitude=36.636&start_date=2023-05-28&end_date=2023-06-26&daily=temperature_2m_max,temperature_2m_min,precipitation_sum,sunrise,sunset&timezone=Europe%2FKyiv (접속 2026-10-14)
- Open-Meteo, Historical Weather API(ERA5 재분석), 노보다리우카 격자 표토(0–7cm) 수분 시간별 자료. https://archive-api.open-meteo.com/v1/archive?latitude=47.781&longitude=36.636&start_date=2023-05-28&end_date=2023-06-26&hourly=soil_moisture_0_to_7cm&timezone=Europe%2FKyiv (접속 2026-10-14)
- Open-Meteo, Elevation API, 노보필–노보다리우카 남북 단면과 마을 사이 능선 표고. https://api.open-meteo.com/v1/elevation?latitude=47.81,47.80,47.79,47.781,47.77,47.76,47.781,47.781,47.781&longitude=36.632,36.633,36.634,36.635,36.64,36.65,36.61,36.665,36.68 (접속 2026-10-14)
- OpenStreetMap Nominatim, 노보다리우카·리우노필·노보필·프리유트네 좌표와 경계 상자 검색. https://nominatim.openstreetmap.org/search?q=Novodarivka&format=json&limit=6&countrycodes=ua&viewbox=36.5,47.85,36.8,47.7&bounded=1 (접속 2026-10-14)
- OpenStreetMap, 노보다리우카–리우노필 일대 지도(개울, 발카 연못, 모크리 얄리강). https://www.openstreetmap.org/?mlat=47.758&mlon=36.690#map=14/47.770/36.660 (접속 2026-10-14)
- Wikimedia Commons, File:UA MaxxPro training 01.jpg(아르미야인폼, CC BY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UA_MaxxPro_training_01.jpg (접속 2026-10-14)
- Wikimedia Commons, File:2024-08-08 - 24 OMBr ZSU - SPG-9 - Chasiv Yar - 05.jpg(우크라이나군 제24기계화여단, CC BY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24-08-08_-_24_OMBr_ZSU_-_SPG-9_-_Chasiv_Yar_-_05.jpg (접속 2026-10-14)
- Wikimedia Commons, File:UA 406th bde M777 01.jpg(아르미야인폼, CC BY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UA_406th_bde_M777_01.jpg (접속 2026-10-14)